4.19후 재무부에 들어가서 가장 궁금한것이 60년도 세출입예산의
집행현황이었다. 그무렵 자우당정부가 관권선거를 자행하면서 세출예산의
과다지출은 없었는지도 궁금했거니와 이렇듯 자못 혼탁한 분위기에서
세입예산은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알고싶었다. 만일 재정수지에
불균형이 벌어진다면 이렇듯 혼란한 틈을 타서 물가가 걷잡을수 없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세출예산은 상반기분으로 76%까지 영달된 것으로
기억한다. 언뜻보기에는 좀 많은것 같지만 어느나라나 상반기에는
정부지출을 많이 하는것이 원칙이다. 그래야 하반기에 정부수입이 제대로
걷혀서 재정의 균형적 집행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연초에는 금융자금의 수요가 적어서 금융기관은 예수초과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집행은 보다 많이 해야한다. 그대신
하반기로 들어서면 추곡수매자금이 나가야하고 추석자금,특히 연말의
결제자금도 많이 나가야한다. 따라서 금융자금의 수요가 하반기로 몰리기
때문에 그에 대비해야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해도 다소 과다한것만은 사실이었지만
균형적재정집행이라는 대승적 입장에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수도 있는
문제였다. 따라서 5월현재로서는 별로 궁색할것이 없을것같은데
각부처로부터 자금의 추가영달 요구가 빗발치니 참으로 이해가 안갔다.

혹 지방관서에서 6월까지 나가야할 지출을 유용,관권선거에 다써버리지나
않았나하는 의심도 났다. 국무회의에서도 이문제로 논란이 많았던것같다.
각부장관으로부터 예산의 추가영달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았지만
재무장관은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니 답답할 뿐이었다. 고령인데다가
금융계의 대원로이기 때문에 같은 장관이라고해서 대들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과도정부의 재정책임자인 윤 병장관은 벌써 그당시 70이 훨씬
넘은,그러니까 지금의 내나이와 엇비슷한 75세의 고령인데다가 해방이 되자
미군정에서 초대재무부장을 지냈고 역시 초대조선은행총재를 역임한
분이다. 허정총리와도 10살의 나이차이가 있고 다른 장관들과는 대부분
20살 연상이었기 때문에 섭섭하면서도 어떻게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불만이 폭발,결국 나에게 공격의 화살이 집중되었다. 일본에서는
명재무차관이 되려면 각부처에서 제출하는 예산요구를 대부분
거절해야하지만 그러나 상대방의 체면을 살리면서 기분을 상하지않게
거절하는 덕성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진리를 꿰뚫은 명언인데
나는 아직 40의나이로 그런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던것 같다.

어쨌거나 나의 부덕한 소치이지만 나에게 공격의 화살이 집중되는 것이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다.

정권의 합헌적교체를 위하여 선거를 실시하고 이를 관리하는
과도정부로서는 행동반경에 스스로의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국민은
혁명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었다. 4.19의 열기에서 아직 공감대를
찾지못하고 중구난방으로 불평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지도 모른다.

자의든 타의든 이대통령은 그자리를 물러났다. 또 이기붕국회의장은
가족이 모조리 자결해 버렸다. 나의 과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가족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일은 외국에서도 찾아볼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정선거의 정치적 책임을 더이상 추궁할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물론 부정선거를 획책한 주동인물이라든지 경무대앞에서 발포를
명령한자는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이것도 조사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또 그와같은 부정선거가 국무회의나 당무회의에서
공식적으로 토의되고 결정하는것이 아니다. 또 유력한 당무위원중에는
대통령직선이라는 극한 상황을 피하기 위하여 여야의 타협을 모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따라서 정치적책임을 추궁한다면 모르되 형사적책임을 묻는다면 극히
한정된 범위로 축소해야 할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자유당온건파로서
선거당시 실세에서 밀려난 국회의원까지 검속되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이 문제는 법무부 소관이기 때문에 그 소상한 경위와 내용은 알수없으나
선거를 통하여 국민으로부터 수임을 받지못한 허정대통령대행으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결단을 내렸으리라고 생각한다. 고충도 많았을 것이다.
그때는 우유부단하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지금와서는 그와같이
자중한것이 오히려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를 받는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국이 혼미하고 선거를 치를때마다 허정과도정부와 같은 선거관리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것을 보면 우유부단하다는 여론의
비난도 있었지만 역사적으로는 제대로 평가를 받는것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