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아프리카 거점인 콩고주재 북한대사관 1등서기관 고영환씨가
지난5월 귀순해 왔다는 보도는 우리가 앞으로의 남북한관계를 관찰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줄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고씨는 김일성부자를 비롯한 김영남외교부장등 북한의 외교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핵심치의 통역을 맡아 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의 협조 여하에 따라서는 앞으로 관계당국의 대북한 정책결정과정에서
보다 정확한 판단을 하는데 일조가 될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씨의 발언중 우리의 주목을 끄는것은 북한의 개방전망에 대해 "무엇보다
경제난 때문에 5년이상 버티지 못할것"이라는 대목이다.
그가 실예로든 북한산업의 "쇼윈도"인 전동차 발전기 공작기계등을
생산하는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의 경우 모국대통령의 시찰에 대비하여
열흘전부터 자재를 모아뒀다가 도착5분전 가동했고 국빈이 돌아가면 기계는
다시 멈추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공장가동률이 30%라고
공장지배인에 실토했다는 것이다.
대안기업소는 지난61년12월 김일성이 이공장을 시찰하면서 공업분야에서의
당의 지도적 역할을 강조,물질적 자극보다는 정치 도덕적인 사상무장이
선행돼야 생산이 발전하고 또 한편으로는 계획관리를 통해 기업들이
독립채산제를 실시해서 공장관리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지시했던 곳이다.
그이후 북한에서는 이를 "대안공업관리체계"라 명명하고 모든 기업공장들이
이 "교시"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대안"이 근3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씨의 증언대로
30%밖에 가동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의 산업부문별 불균형상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실감케 해준다. 또한 북한은 이러한 경제적난관을
타개하기위해 지난 84년9월 "합작회사운영법"이라는것을 제정공포하고
서방국가의 자본을 유치해서 서방과의 경제교류를 적극화해보려고 시도한바
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합영법"에 따라 서방자본이 북한에
투자된것은 조총련계의 몇건에 불과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때 고씨의 "5년이상 버티지 못할것"이라는 증언은
사회주의국가들의 지각변동에 초첨을 맞춘 외교관적 상황인식이라고
생각되며본질은 북한이 사상과 물질적 자극을 김일성유일체제속에서 어떻게
조화시켜 가느냐가 북한의 개방에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