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한정식집 "개업 이래 이런 불황 처음"…변호사·의사도 '비명'

고소득 자영업도 무너진다
가구 사업소득 5분기째 ↓

2019년 4분기 가계동향
< 썰렁한 종로 ‘젊음의 거리’ > 내수 침체와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자영업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서울 종로 ‘젊음의 거리’가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가계의 지난해 4분기 사업소득이 1년 전에 비해 2.2% 감소했다. 2018년 4분기 이후 5분기 연속 줄어 관련 통계 작성 후 최장기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가계 사업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개인 자영업자들의 돈벌이가 그만큼 악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통계청이 20일 발표한 ‘2019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를 보면 작년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77만2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늘었다.

전체 소득 중 근로소득은 5.8% 늘었지만 사업소득은 2.2% 줄었다. 1분위와 2분위 사업소득은 각각 11.6%, 24.7% 증가했지만 3분위, 4분위, 5분위는 각각 10.9%, 7.0%, 4.2% 감소했다. 1분위는 소득 하위 20%, 5분위는 상위 20%다.

사업소득이 고소득층에서 줄고 저소득층에서 증가한 것은 3분위 이상 자영업자가 소득이 감소해 1~2분위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존 1~2분위 자영업자보다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아 1~2분위 전체의 사업소득이 증가한 듯한 ‘착시효과’가 나타났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침체의 영향이 고소득 자영업자에게까지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계 사업소득 5분기 연속 감소 '사상 최장'
경기 불황에 코로나까지 겹쳐20일 낮 12시20분 서울 명동의 한 한식집. 일반적으로 식당이 가장 바쁜 시간대지만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식당 주인인 박금옥 씨(58)는 “하루 매출이 50만~6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0만원도 안 된다”며 “2011년 장사를 시작한 이후 어려운 고비가 몇 번 있었지만 이번에는 고비를 넘기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인사동 고급 한정식집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보리굴비정식을 파는 한 대형 한정식집 A사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 이후 손님이 이전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며 “외국인도 종종 왔는데 지금은 아예 전멸했다”고 말했다. 남도한정식을 파는 다른 한정식집 B사장은 “대구에서 확진자가 갑자기 불어났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오늘 저녁 손님 가운데 절반이 예약을 취소했다”며 “인사동은 평소 외국인이 붐비는 곳이다 보니 소비자들이 더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식집 사장은 “30여 년 전에 터를 잡고 외환위기도 이겨냈는데 이런 위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개인 자영업자들이 받고 있는 타격은 최근 통계에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이들이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를 보여주는 ‘사업소득’은 역대 최장인 5분기 연속 감소했다. 자영업자는 주 52시간 근로제와 최저임금 인상 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직업군 중 하나로 꼽힌다. 코로나19로 내수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어 사업소득 감소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자영업자들의 소득마저 줄고 있다는 게 우려스럽다”고 했다.버티던 고소득 전문직도 타격

통계청이 이날 내놓은 ‘2019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에 따르면 작년 4분기 국내 가구의 사업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2.2% 줄었다. 2018년 4분기 이후 5분기 연속 줄어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후 최장기간 감소세다. 이번 통계는 지난해 말 기준이어서 코로나19에 따른 영향이 반영되지 않았다. 이 충격이 반영되는 올해 1분기 통계엔 사업소득 감소폭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최근엔 고소득 전문직 사업자들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작년 4분기 5분위(소득 상위 20%) 가구의 사업소득은 1년 전에 비해 4.2% 감소했다. 2018년 4분기만 해도 1.2% 증가했으나 작년 1분기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계속 줄고 있다.서울 서초동에서 15년째 개인 사무실을 운영 중인 한 변호사는 “수임료 수입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까지 발생해 매출에 큰 타격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변호사는 “개업 변호사들은 일종의 영업직이라 잠재 의뢰인을 만나고 네트워킹하러 다니는 것이 중요한데 사람들이 만남을 꺼리다 보니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대형 로펌 중 한 곳은 중국 진출을 위해 현지에서 워크숍을 열려다 취소하기도 했다.
소득격차 여전히 커

인천 영종도에서 활동하는 한 관세사는 “중국에서 오는 물량이 이달 들어 70~80% 줄면서 타격이 상당하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이 1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안 그래도 경기가 나빠 수출과 수입이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타격이 클 것 같다”고 했다.

병원들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환자가 크게 줄었다. 서울 구로구에서 이비인후과를 운영하는 한 의사는 “이번주 예약했던 환자 중 절반 이상이 취소했다”며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는 다른 중소병원은 대부분 20~30% 정도 줄어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소득 자영업자의 사업소득이 감소한 것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그나마 잘 버티던 전문직종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이번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계소득 양극화는 다소 완화된 것으로 나왔다. 1분위와 5분위 가구 간 소득 격차를 보여주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작년 4분기 기준 5.26배였다. 1년 전(5.47배)보다는 개선됐다. 이 배율은 5분위 평균소득을 1분위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수치가 클수록 소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작년 4분기의 5분위 배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분기(5.20배)와 2009년 4분기(5.23배)보다도 높았다. 성 교수는 “분배지표가 1년 전에 비해서는 개선됐지만 정부 재정 투입 일자리 덕분이어서 지속 가능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태훈/성수영/김익환/신연수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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