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전기 사용량 '최대'… 전력 예비율도 '위태위태'

예비율 8.4% '5년 만에 최저'

23일 전기 사용량 9070만㎾
예상치 못한 냉방 수요 급증에
세웠던 原電 부랴부랴 재가동

백운규 장관 "비상상황 대비"
지난 겨울 '급전' 10차례 발동

내달까지 불볕더위 지속
"이불 효과로 열대야 지속"
'최장 폭염 일수' 경신 가능성
1년 중 가장 더운 절기 대서(大暑)인 23일 낮, 시민들이 부채질을 하며 서울 중구 남대문로를 걷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전력당국에 초비상이 걸렸다. 23일 최대 전력수요는 오후 4시께 9070만㎾를 기록했다. 종전 최대치였던 지난 2월6일의 8824만㎾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냉방 수요가 당국 예상치를 크게 웃돌고 있어서다.

전력 예비율은 이날 8.4%까지 급락했다. 2013년 8월19일(6.4%) 이후 4년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폭증하는 전력 사용량을 감안할 때 수요가 한순간에 몰리면 블랙아웃(대정전)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전력거래소는 24일 3500여 개 대·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올여름 첫 전력 수요감축 요청(DR)을 발동하기로 했다.
◆“대정전 또 날라” 초비상

정부는 원자력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가용 발전소를 최대한 동원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안정적인 전력수급 기준으로 삼고 있는 ‘예비율 10%’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최근 정비를 마친 한울 원전 4호기는 지난 주말부터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한울 2호기도 조만간 재가동한다. 정부는 올 상반기 24기의 국내 원전 중 8~12기를 ‘계획예방점검’ 명목으로 세워 뒀다. 하지만 최근 예상치 못한 폭염으로 전력사용량이 급증하자 서둘러 다시 돌리고 있다. 다음달 중 최대 19기까지 운전에 들어갈 것이란 게 정부 설명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작년 5월 76.4%였던 원전 가동률은 탈(脫)원전 정책 본격화에 따라 올 3월 54.8%까지 낮아졌으나 다시 올라가고 있다. 지난달 67.8%를 기록한 데 이어 다음달에 80% 수준까지 상승할 전망이다.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업무보고에서 “발전기 공급이 계획대로 확충되고 있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비상자원도 갖추고 있다”며 “전력 공급에는 차질이 없도록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수요감축은 타이밍 놓쳐

정부가 전력수요 예측에서 ‘헛발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음달 둘째, 셋째주께 올여름 최대 전력수요(8830만㎾)에 도달할 것으로 봤지만 보름 이상 앞당겨진 이날(9070만㎾) 최대 수요를 크게 뛰어넘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DR 제도 역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DR은 한국전력거래소와 계약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전력 사용 자제를 요청하는 대신 현금으로 보상하는 제도다. 2011년 9월15일 발생한 대정전이 되풀이되는 걸 막기 위해 2014년 ‘급전지시’란 이름으로 도입됐다. 지난 겨울엔 총 10차례 발동됐다.

이날 ‘최대 전력수요 8830만㎾ 초과 및 공급 예비력 1000만㎾ 미만’이란 두 가지 조건을 충족했지만 오후 늦게까지 발동되지 않았다. “기업 부담을 고려해 하루 전 예고하겠다”는 당초 약속에다 재정 부담도 만만치 않아서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DR 발동은 의무사항이 아니고 공급 예비율 역시 아직 여유가 있는 편”이라며 “올여름 예비율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마다 계약기업들을 대상으로 몇 차례 수요감축 요청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111년 만에 가장 ‘뜨거운 아침’

전력수급이 불안한 건 예기치 못한 폭염 때문이다. 이날 오전 서울의 최저기온은 29.2도였다. 종전 최고치였던 1994년 8월15일(28.8도) 기록을 갈아치웠다. 또 강원 강릉의 아침 최저기온은 31.0도였다. 지난 100여 년간 전국에서 아침 최저기온이 30도를 넘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가 111년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례적인 더위는 다음달에도 계속될 것이란 게 기상청 예보다. 기상청 관계자는 “북태평양 고기압 영향으로 다음달 20일 이후까지 무더운 날씨가 지속될 수 있다”며 “소나기가 오더라도 일부 지방에 국한되고 강수량도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973년 이후 지금까지 폭염 일수가 두 번째로 많은 해는 2016년(22.4일)이었다. 이대로라면 이 기록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 기상청은 “2016년 8월은 몽골에서 형성된 뜨거운 고기압이 내려오면서 이례적으로 더웠다”며 “당시처럼 달궈진 몽골지역 고기압이 한반도로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열대야도 계속되고 있다. ‘이불 효과’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상공에 자리잡은 구름이 지표면에서 방출된 열을 붙잡는 현상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제10호 태풍인 암필에 동반된 구름대가 한반도로 유입돼 이불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재길/성수영/박진우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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