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무급휴직 확산 등으로 가계대출을 제때 갚지 못하는 개인이 늘어날 우려가 높아졌다고 판단해 신용대출 만기 연장 등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한 소비자가 개인 신용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금융당국은 무급휴직 확산 등으로 가계대출을 제때 갚지 못하는 개인이 늘어날 우려가 높아졌다고 판단해 신용대출 만기 연장 등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한 소비자가 개인 신용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금융회사 신용대출을 갚지 못하게 된 개인과 자영업자에게 정부가 원금 상환을 최대 1년간 늦춰주기로 했다. 하지만 누구까지 포함할지 구체적 기준이 정해지지 않아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8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개인채무자 지원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선제 금융지원으로 대규모 가계 신용위기를 막겠다는 의도다.

핵심은 금융사들이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프리워크아웃 제도를 코로나19 피해자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금융사들은 개인 차입자의 한 달 소득에서 생계비를 빼고 남은 돈이 그달에 갚아야 하는 원리금에 미치지 못하면 만기를 늦춰주거나 이자를 깎아주고 있다.

이번 금융지원은 코로나19로 소득이 줄어 차입금을 정상적으로 상환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개인과 개인사업자만 신청할 수 있다. 금융회사 한 곳에서만 대출받은 개인(단일채무자)은 개별 금융회사의 프리워크아웃을, 2개 이상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은 사람(다중채무자)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을 받도록 했다.

코로나 피해로 빚 못 갚는 개인…70兆 신용대출 상환 1년 늦춘다
대상은 마이너스통장 카드론 등 모든 금융권의 가계 신용대출(담보·보증대출 제외)과 햇살론, 바꿔드림론, 안전망대출 같은 정책서민금융대출이다. 원금 상환이 미뤄져도 이자는 내야 한다. 상환 연장 기간은 신청자가 6개월~1년 사이에서 정할 수 있다. 은행 카드사 등 전 금융권의 개인 신용대출 규모는 지난 3월 기준 62조8000억원가량이다. 여기에 정책서민금융대출을 합치면 70조원 규모로 연장 대상이 불어난다.

그래도 빚을 못 갚는 사람의 연체채권은 자산관리공사(캠코)가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를 조성해 최대 2조원어치를 떠안기로 했다. 연체채권을 대부업체가 사들여 가혹하게 추심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금융위는 “이달 말부터 연말까지 지원 프로그램을 운용할 계획”이라며 “세부 기준은 업계와 협의해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채무자 지원 강화’ 금융사 부담 증가, 지원 기준 구체화 필요
코로나로 연체위기 놓인 개인에 금융 지원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금융지원 대상을 개인까지 확대한 것은 기업 중심으로만 자금을 쏟아서는 급격히 악화하고 있는 경제상황을 극복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가계부채 부실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우니 사전에 손을 써보겠다는 얘기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정부가 직접적인 지원을 하겠지만 민간부문에서도 함께 충격을 좀 줄여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데다 구체적인 지원 대상을 확정하기도 까다로워 최종안이 발표되기까지 여러 난관이 남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 피해로 빚 못 갚는 개인…70兆 신용대출 상환 1년 늦춘다
정부 “기존 대책으로는 한계”

정부는 지난달 19일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가계대출 지원과 관련해 두 가지를 내놨다. 정부 산하 신용회복위원회의 신용회복 지원 대상에 코로나19 피해자를 추가해 원금상환을 유예하고 채무감면 조건을 완화하겠다는 것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최대 2조원 규모로 소상공인과 개인채무자의 연체채권을 매입하겠다는 대책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으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연장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자 기존 대책만으로 가계대출 부실을 막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서 무급휴직과 실직 등의 영향으로 개인이 가계대출을 제때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취약 개인채무자가 가계대출 상환을 연체하거나 금융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위험이 가시화하기 전에 예방체계를 강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중채무자에게는 지난달 대책의 연장선에서 신용회복위원회와 캠코 중심으로 금융권 전체의 대출을 일괄적으로 조정해주도록 했다. 연체가 우려되면 최장 1년간 상환을 유예하고 3개월 이상 장기간 연체하면 이자를 모두 면제해주거나 최대 70%까지 빚을 깎아주고 최장 10년에 걸쳐 빚을 갚는 방식이다. 대상은 신용대출만 포함된다.

금융사 한 곳에만 빚을 지고 있는 단일채무자에 대해서는 6개월에서 1년까지 이자 감면 없이 채무상환을 유예해준다. 금융사들은 자체적으로 프리워크아웃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 코로나19 피해를 입어 빚을 갚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여기에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위는 코로나19 피해로 발생한 개인 연체채권이 대부업체로 팔려가 과잉추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들 채권을 캠코가 매입하도록 했다. 캠코가 개인 연체채권을 사들인 뒤 빚 독촉을 늦추거나 깎아주는 혜택을 줄 예정이다.

지원 기준 정하기가 난관

코로나19 가계대출 대책의 초안이 나왔지만 금융권에서는 실행까진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지원 대상을 코로나19의 피해자로 정의했지만 구체적인 기준을 아직 세우지 못했다. 금융위는 다중채무자와 단일채무자의 신용대출 만기연장 대상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득 감소 △가계·신용 대출 대상 △대출 상환이 곤란한 상황 △연체 또는 연체 우려 증명 등의 조건을 모두 채운 경우로 한정했다. 하지만 네 가지 조건이 어떤 때 충족되는지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관련 기관과 논의하겠다는 내용이 전부다. 기준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지원 규모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금융위가 지난주부터 금융업계와 논의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이다. 개인 차입자도 문제지만 금융사의 부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위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 비판을 피할 수 없어 정부가 기준을 세우기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 지원에 대해서는 힘들더라도 대승적으로 협력할 생각이지만 개인 신용대출 부문까지 금융사에 부담을 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4·15 국회의원 총선거 바로 앞에서 포퓰리즘 성격의 대책이 발표되는 것도 삐딱하게 보인다”고 꼬집었다.

박종서/임현우/김대훈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