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주회사가 벤처캐피털을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정부와 여당이 관련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대기업 자금이 벤처시장으로 흘러들어 인수합병(M&A)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당 국회의원 21명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지난 21일 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벤처투자 전문회사인 벤처캐피털을 금융업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벤처캐피털은 그동안 금융·산업자본(금산) 분리 규제에 따라 지주사의 자회사로 둘 수 없어 벤처기업의 M&A를 막는 걸림돌로 꼽혀왔다.

대기업 '벤처 M&A' 판 키운다
공정거래법상 일반 지주회사의 자회사는 금융업이나 보험업을 영위하는 손자회사를 보유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김 의원은 “창업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M&A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법 개정에 동의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벤처기업 활성화를 위해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VC)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반(反)대기업 정서로 인해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벤처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같은 법적 장벽이 없는 미국 유럽 등의 글로벌 대기업들은 이미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앞세워 인수합병(M&A)을 주도하고 있다. 2016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2011년 1068개에 불과하던 미국 내 CVC는 2015년 말 1501개로 급증했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은 벤처캐피털 자회사 ‘GE 벤처스’를 통해 2013년 이후 100개 이상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글은 지주사 알파벳을 설립해 초기단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GV(구글 벤처), 후기단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GC(구글 캐피털) 등으로 단계별 투자를 하고 있다.

벤처업계에선 국내에서도 CVC를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높여왔다. 벤처산업 육성을 위해 M&A시장을 활성화하는 게 시급한 과제라는 설명이다. 벤처캐피털이 돈을 버는 방법은 기업공개(IPO)와 M&A 두 가지다.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IPO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자금력이 약한 벤처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하기까지 버틸 만한 여력을 확보하긴 쉽지 않다. 맥킨지의 ‘벤처산업 선순환 구조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IPO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2년이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M&A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창업 이후 3년 차쯤 맞닥뜨리는 ‘죽음의 계곡’을 벗어나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자 국내 대기업들은 규제를 피해 울며 겨자 먹기 식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롯데액셀러레이터는 신동빈 회장(19.99%), 롯데지주·롯데케미칼·호텔롯데·롯데닷컴(각각 9.9%) 등이 출자해 세운 독립법인이다. 일부 기업은 태스크포스(TF) 형태로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 개정에 나선 것은 일반지주회사가 벤처캐피털을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기업의 벤처기업 투자와 M&A를 활성화해 벤처기업의 성장을 도모하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