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투명경영 선도할 '감사위원회 정상화'
한국의 투명성에 대한 국제 평가는 늘 바닥이다. 평가기관마다 아프리카 저개발국보다 낮은 점수를 내놓는다. 그동안 저평가에 대한 체계적 원인 분석 없이 ‘기업주 책임’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다. 사실 부패의 본산은 정치권력이고 공공 부문 비리가 더 심각하다. 기업 비리는 기업주 책임도 크지만 임직원이 적극 가담하고 함께 은폐하는 ‘공모 프레임’이 더 문제다.

투명성을 갉아먹는 최악의 해충은 회계 조작이다. 거짓 재무제표는 회계담당자와 이사회가 공모하고 외부감사인이 부주의 또는 고의로 그냥 넘기면서 마각을 드러낸다. 주식회사의 경우 주주는 출자금에 대한 유한책임만 부담하고 경영은 이사회가 맡는다. 이사의 업무집행과 회계보고의 적정성을 감시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주식회사는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감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감사위원은 사외이사 중에서 선임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의 겸임은 업무집행과 감시활동이 동일인에 의해 수행되는 문제점은 있지만 업무과정에서 습득한 정보를 감사에 활용하는 장점도 있다. 회사 경영실적을 금액으로 표시하는 재무제표 검증이 감사위원회의 주된 기능이기 때문에 감사위원의 ‘재무제표 이해능력(financial literacy)’은 필수적이고, 적어도 1인은 회계에 정통한 전문가 중에서 선임해야 한다.

대기업은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 과정에서 지분투자를 통해 자회사와 관계회사를 다수 보유하기 때문에 이를 결합한 연결재무제표가 중요하다. 특히 금융회사는 자회사와 손자회사 및 관계회사가 얽혀 연결 절차와 지분법 평가가 매우 복잡하다. 신한금융지주는 은행, 카드, 금융투자, 생명보험 등 13개 자회사와 200개 넘는 손자회사를 연결하고, 100개 넘는 지분법 적용 대상 관계회사를 포괄하는 매우 복잡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한다. 해외에 있는 자회사의 현지 통화를 원화로 환산하는 절차까지 얽힌다. 감사위원회의 감사보고서는 이사회와 주주총회에 제출되고 이를 기초로 외부감사인이 회계감사를 수행한다. 회계전문가가 없는 덕망가 중심의 감사위원회로서는 내용에 대한 기초적 이해도 쉽지 않다.

소규모 가족기업은 이해관계자도 적고 파산해도 손해 입을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나 자산총액이 조(兆) 단위를 넘어서는 경우 투자자와 채권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와 근로자 등 이해관계자가 대폭 확대되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업무집행과 회계에 대한 감시가 더욱 중요해진다. 지난 7일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주관으로 ‘감사위원회 운영 모범규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화 기준을 ‘1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은 사외이사 중에서만 선임하는 내용과 감사위원회를 보좌하기 위한 내부 감사부서 설치 권고도 포함된 초안이 소개됐다.

상근감사를 폐지하고 비상근인 사외이사로 감사위원회를 대체한 것은 독립성이 확보된 인사를 선임하고 상근 보좌기구를 설치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감사부서 책임자에 대한 실질적 선임 권한도 감사위원회에 부여해야 한다. 외부감사인과 내부감사부서 책임자 선임뿐만 아니라 감사 투입 시간 및 보수도 감사위원회가 결정할 사항이다. 회계담당부서가 감사보수 책정을 주관하는 현재 관행은 외부감사인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함정이다. 내부감사부서가 산출 근거를 마련하고 감사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부실감사로 회계사고가 발생하면 회사 감사위원에게도 민형사 책임이 부과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기업회계 투명성 제고를 위해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 전면 개정됐고 감사인 지정 대상도 대폭 확대됐다. 외부감사인의 감사절차는 회사 회계부서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이를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그러나 감사위원회 감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이사를 겸직하는 감사위원이 인사권을 발동할 수 있고 허위보고에 대한 징계 수단도 많다. 감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해야 회계 투명성이 개선된다. 관계 법령 개정을 통해 전문성과 독립성이 확보된 감사위원회를 정착시켜 기업 경영 투명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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