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11일 서울 영등포 민주통합당 당사에서 문재인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있는 문성현 신임 노사정위원장.  연합뉴스
2012년 10월11일 서울 영등포 민주통합당 당사에서 문재인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있는 문성현 신임 노사정위원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공석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에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65)를 위촉했다. 문 신임 위원장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민노당 설립을 주도해 ‘노동계 대부’로 통하는 인물이다. 대학(서울대 경영학과 71학번) 때 노동운동을 시작해 2006년 정치를 하기까지 40년 가까이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89년 구속 당시 문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을 만큼 대통령과 잘 아는 사이다.

이런 그가 법률상 대통령 자문기구인 노사정위원장(장관급)에 임명되자 각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노사정위의 기능과 역할은 대통령 자문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과 관련한 경제·사회 정책과 노동 관련 주요 이슈 전반에 대해 노·사·정 대표가 모여 협의하는 장(場)이다.

재계와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노동계 편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노동부 장관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출신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임명된 데 이어 중립성이 요구되는 노사정위원장 자리마저 노동계 출신이 차지해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기울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역대 11명의 노사정위원장은 대부분 중립 성향 학자나 정치인이었다. 노동단체 활동을 거친 인물은 노무현 정부 때 김금수 위원장(6대·한국노총 출신)과 조성준 위원장(7대·정치인 출신) 정도다. 단위노동조합 위원장을 거치는 등 노동운동에 전적으로 몸담았던 인물이 노사정위원장에 오른 건 문 위원장이 처음이다.

국회도 균형추가 경영계보다는 노동계 쪽으로 쏠려 있다. 노동 관련 정책과 법률, 예산 등을 주관하는 환경노동위원회는 위원 16명 중 7명이 노동계 출신인 데 비해 재계·경제단체 출신은 한 명도 없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1997년 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설치했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사항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이듬해인 1998년 2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맺는 성과도 냈다.

하지만 1999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정리해고 및 파견제 도입을 둘러싸고 내부 갈등을 겪다가 노사정위를 탈퇴한 이후 ‘반쪽짜리’ 기구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1월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등 양대 지침을 발표하자 한국노동조합총연맹마저 탈퇴했다. 이후 노사정위는 사실상 ‘운행 중단’ 상태다. 위원장도 지난해 6월7일 김대환 위원장이 사퇴한 이후 빈자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계 출신 인사를 노사정위원장에 위촉한 것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를 설치하고 의제도 양극화 해소와 근로빈곤층 보호를 위한 복지영역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계의 노사정위 복귀가 필수적이다. 문성현 전 대표를 내정한 것은 민주노총 복귀를 염두에 둔 인사라는 해석이다. 정작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 복귀를 둘러싸고 조직 내부에서 아직 이견이 분분한 터라 문 위원장 체제가 출범하더라도 쉽게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노사정위는 유럽식 모델을 본뜬 것이다. 네덜란드가 이 모델을 성공시킨 대표 사례로 꼽힌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 이른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으로 불리는 경제위기 상태였다. 임금과 물가가 연쇄적으로 올라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1982년 루드 루버스 총리는 바세나르협약이라 불리는 노·사·정 대타협으로 위기 극복의 계기를 마련했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노동계는 임금을 양보하고, 경영계는 일자리를 보장했으며 정부는 사회보장을 확충한 것이 주효했다.

노사정위는 노동뿐 아니라 기업 구조조정, 사회보장 등 경제와 복지정책 전반을 협의한다. 노동정책이나 노동 관련 법률은 노동계와 경영계의 이해가 상반되는 경우가 많아 노사정위가 사실상 사전 협의·조정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 만큼 노사정위원장은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하지만 양대 노총이 노동분야 두 수장(고용노동부 장관과 노사정위원장)을 차지해 네덜란드식 대타협을 원만하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많다.

차관급인 노사정위 상임위원 자리에도 친(親)노동쪽 인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62)로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노동비서관을 지냈다.

최종석 노동전문위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