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집단적 사고와 '악마의 변호인'
1961년 4월17일 미국은 쿠바 남쪽 피그만에 여덟 척의 배를 보냈다. 여기엔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는 쿠바 망명자 1500여 명으로 구성된 상륙부대가 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전은 비참한 실패로 끝났다. 상당수가 사살되고 1000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다. 미국은 국제적 망신을 당해 배상금을 물었고 카스트로 정권은 더욱 공고하게 자리잡았다. ‘피그만 참사’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미국 정부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사건은 ‘집단적 사고’와 ‘동조화 현상’의 폐해가 작용한 대표적 사례로 알려져 있다.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나 참모들이 무능해서 이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었다. 개개인의 역량은 뛰어났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 아무도 반대하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 집단은 더욱 집단의 결정을 확신하게 된다. 외부에 대해서는 편향된 시각을 갖고 대안이나 반대 의견은 도외시한다. ‘쿠바를 공격할 것인가 아니면 쿠바를 카스트로에게 넘겨줄 것인가’라는 극단의 결론만 놓고 논의한 결과 이런 결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크고 작은 회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발전하는 조직일수록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카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라는 책에서 다른 의견을 내지 못하는 조직은 불행해진다고 주장했다. 타인의 의견에 동조만 하다 보면 사회적 쏠림이 나타나고, 그 쏠림이 집단 편향을 불러와 자칫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는 통계 분석을 통해 법관들이 모여 결정하는 재판부의 판결에서도 동조와 쏠림 현상이 나타남을 지적하고, 이견을 환영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조직과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청와대에서 “회의 참석자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의무이고, 심지어 모르면서 황당하게 하는 이야기까지 해야 한다”는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이란 말이 떠올랐다. ‘악마의 변호인’이란 뜻이다. 가톨릭 교회에서 성인(聖人)을 추대할 때 그 대상자의 행적이나 인격의 결함을 추적하고 일부러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맡은 사람을 가리킨다. 무조건적인 추앙은 위험하니 일부러라도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견을 유도하고 존중하는 분위기와 절차를 일부러라도 마련하고 권장하는 것이 더 큰 발전과 도약을 위한 지름길임을 생각해 본다.

고원석 <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wonseok.ko@leek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