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의 공포지수로 통하는 시카고 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 지수(VIX)가 신뢰성 논란에 휘말렸다. 지수 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어, 시장위험을 적절히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VIX는 지난 8일(현지시간) 9.72까지 하락하면서 지난 1993년 12월 27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들어 VIX는 28% 급락하며 다우지수 상승률(6%)을 4배 이상 웃돌고 있다. VIX는 지난 7일 프랑스 대선에서 중도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당선되면서 ‘프레시트(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 우려가 해소되자 급락했다. 급기야 지난주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면서 10안팎의 역대 최저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그래픽 참조).

VIX는 향후 증시가 급락할 가능성을 지수로 표현한 것이다. S&P500지수의 옵션 가격을 토대로 한 달 후 증시가 얼마나 변동할 것인지를 나타낸다. 증시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많을수록 VIX는 상승한다. 증시하락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가격인 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VIX는 90가까이 폭등했고, 2015년 8월 중국의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면서 다우지수가 1000포인트 넘게 빠지자 순식간에 53까지 상승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 뉴욕증시의 변동성이 역대 최저수준까지 낮아진 이유로 지정학적 리스크의 해소와 미 중앙은행(Fed)의 완만한 긴축 전망,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여전한 기대감을 들었다.

반면 일부에서는 최근 VIX의 흐름이 시장 리스크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마켓워치는 과거 사례를 분석한 결과 최근 공포지수의 흐름은 완전히 잘못됐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 이후 VIX가 한자릿수로 떨어진 적은 1993년과 1994년 말, 2007년 초반 등 단 3번에 불과했으며, 매번 모두 1년 뒤에 증시가 큰 폭의 조정국면에 들어갔다는 점을 들었다. 월가의 한 투자분석가는 “최근의 낮은 증시 변동성은 Fed에 의해 인위적으로 창출된 것”이라며 “예기치 않은 상황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케빈와스 전 Fed 의장은 지난 8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헤지펀드 투자포럼인 ‘손 콘퍼런스’에서 “위험에 대한 측정치가 이처럼 낮을 때가 실제로는 가장 위험하다는 신호”라며 “지금은 두려움을 느낄 때”라고 말했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최근 CNN머니에 나와 “시장이 긍정요소를 과대평가하는 반면 위험요인은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공포지수의 오류 가능성을 시사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