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중국 등이 한국을 빼놓고 북한 핵문제를 논의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엊그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잇달아 전화통화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들어서만 아베 총리, 시 주석과 각각 세 차례 접촉했다. 반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는 지난 8일 미·중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한 번 통화하는 데 그쳤다. 미국만 그러는 게 아니다. 일본과도 위안부 소녀상 설치 문제 등으로 발목을 잡혀 외교적 모욕을 당하고 있다. 눈 뜬 채 ‘코리아 패싱’을 당하고 있다는 게 공연한 자격지심만은 아닐 것이다.

기가 막히는 건 ‘코리아 패싱’이 대통령 탄핵에 따른 한국 정부의 과도체제 탓일 뿐, 한국의 외교적 위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치부하려는 일부 외교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상이 그렇지 않음은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과의 정상회담 내용을 전하면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하더라”고 돌출발언을 한 것이나,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일본은 동맹, 한국은 파트너”라는 말로 한국인들을 당혹스럽게 한 것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볼 게 아니다.

한국 외교를 지켜봐 온 사람들은 무원칙하고 줏대없는 외교가 초래한 자업자득이라고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에 한국만 중국 눈치를 보느라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게다가 중국의 이른바 전승기념식에 미국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참석을 강행했다. 중국이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최근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행태로 볼 때 ‘줏대없는 나라’로 만만하다는 인상만 더 심어준 결과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은 실질적 위협으로, 현상유지를 용인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어떻게든 북핵 폐기를 관철하겠다는 얘기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누가 뭐래도 한반도 안보의 근간은 한·미동맹이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