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 '저들'이 아닌 '우리들' 이야기가 가진 힘
포항에 있는 한 음악학원. 예사롭지 않은 피아노 연주 소리를 따라가보니 한 소년이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다. 그런데 이 소년, 하는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 16세 정민성 군은 자폐아다. 하지만 한 번 들은 곡은 그대로 피아노로 쳐내는 절대음감을 갖고 있다. 국민체조 음악 같은 곡도 슬픈 곡으로 편곡해 칠 만큼 감성적인 해석도 뛰어나다. 민성이가 이토록 피아노에 집착하게 된 건 그것이 그의 유일한 소통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표현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해하고 짜증도 자주 부리던 소년은 피아노를 치면서 표정까지 밝아졌다고 한다. 그런 민성이에게 기적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민성이의 소식을 들은 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협연해보자고 제안한 것. 민성이는 협연을 하며 사람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민성이의 이야기는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18년 동안 방송하며 보여준 것들이 어떤 성격인지 잘 드러낸다. 다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단면들이다. 제목이 담고 있듯이 세상의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때론 섬뜩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일처럼 보이는 사건이 소개되기도 하지만, 한 걸음 더 다가가 사연을 들어보면 숨겨진 아픔이나 감동이 있다는 걸 발견하곤 한다.

예를 들어 작년 12월 방영된 엄마의 이야기가 그렇다. 엄마는 23세 아들을 철창에 가둬두고 살아간다. 언뜻 비정해 보이지만 한 걸음 들어가면 그렇게 해서라도 몸이 아픈 정신지체 1급 아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엄마의 마음이 보인다. 아들이 철창에 갇힌 게 아니라 도리어 엄마가 자식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는 것이었다. 2015년 3월 방영된 내용인 얼굴에 온통 구두약을 바르고 살아가는 노숙자 오누이의 이야기는 보는 이들을 섬뜩하게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것이 위험으로 가득한 길거리에서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색칠’이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제작진의 끈질긴 설득으로 얼굴에 바른 구두약을 지우고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는 오누이의 행복한 모습은 시청자 마음속에 짙게 드리워진 검은 칠마저 지워내는 느낌을 준다.

900회를 훌쩍 넘기며 매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작은 이야기들을 소개해온 이 프로그램은 그래서 또 다른 의미의 뉴스처럼 보인다. 뉴스를 틀면 누구나 다 아는 정치인과 경제인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정작 우리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사건·사고 속에 잠깐 등장하는 사회 뉴스의 한 부분 정도로 채워질 뿐이다. 그것이 일종의 ‘저들의 뉴스’라면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는 그 뉴스가 소외해온 ‘우리의 뉴스’인 셈이다.

민영방송인 SBS가 처음 방송을 시작하면서 적은 제작비로 더욱 효과적인 내용을 구성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 VJ(비디오 저널리스트) 시스템이었다. 이 저널리스트들은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전국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이야깃거리를 발굴했다. 그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쌓이자 이 프로그램의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18년 동안의 기록처럼 다가왔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정말 그간 많이도 바뀌었다. 한때 절대적 권위를 가졌던 뉴스들이 이제는 그 많은 소소한 뉴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시선이 생겼고, 작은 뉴스도 저마다 가치가 있다는 다양성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말이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는 그 변화를 꾸준히 보여주고 또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