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광석 구리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올 들어 글로벌 증시의 강세를 이끌었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기대가 약해지면서다. 주가 상승 동력마저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증시 전문가들은 세계 수출경기가 좋은 데다 중국 경기 회복세가 뚜렷한 만큼 중장기적으로 원자재값이 반등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봤다.
철강·구리·정유주, 저가매수 기회 오나
◆철광석값 한 달 새 30% 급락

20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1.97달러(3.8%) 급락한 배럴당 50.44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WTI 가격이 51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3일 이후 처음이다. 미국의 휘발유 재고가 급증했다는 소식이 악재로 작용했다. 유가 하락은 국내 주식시장에 바로 영향을 미쳤다. SK이노베이션(-1.22%) GS(-1.53%) 등 주요 정유주가 하락했다.

철광석 가격의 하락세는 더욱 가파르다. 한 달 전까지 t당 90달러를 웃돌던 철광석 가격은 30% 넘게 폭락해 t당 62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 여파로 포스코는 지난 1분기에 영업이익 1조3650억원의 ‘깜짝 실적’을 내고도 이달 들어 주가가 9.3% 떨어졌다.

세계 1위 철광석 기업인 발레SA가 시가총액의 25%를 차지하는 브라질 증시도 약세다. 펀드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10개 브라질펀드의 최근 한 달 수익률은 -4.42%를 기록했다. 고공행진하던 구리값 역시 지난 3월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LS 풍산 등의 주가가 조정을4 받고 있다.

원자재 가격의 약세는 미국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정부의 인프라 투자 정책이 혼선을 거듭하면서 기대감으로 형성됐던 ‘가(假)수요 거품’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 들어 연일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던 미국 다우지수가 지난달 초 21,115.55를 정점으로 최근 20,404.49까지 밀려난 것도 원자재값 하락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심리지표와 실물지표 간 괴리가 2001년 이후 최고치로 벌어졌다”며 “실물지표가 따라오지 못하면 증시 하락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 인프라 확대 기대는 여전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기대’가 꺼진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세계 2위 원자재 소비국인 중국의 경기 회복세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6.9%로 2015년 3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중국 정부가 대규모 인프라 투자 확대를 준비하고 있고 원유 수입도 줄지 않고 있다”며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부터 글로벌 경기회복세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포스코 LS 등의 주가 조정은 ‘저가 매수 기회’로 판단했다.

원자재값 약세가 글로벌 경기 약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여전하다. 박중제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미국 중앙은행이 본격적으로 긴축을 강화하기 전까지는 원자재값 하락만으로 글로벌 경기 회복 추세가 끝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드라이빙 시즌(4~6월·교통량이 늘어나는 시기)이 시작되면서 휘발유 수요가 늘어나 원유값이 다시 반등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당분간 원자재 관련 주식이나 펀드상품 등에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아직까지 트럼프 정책 기대로 형성된 거품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원자재값 등락에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은 정보기술(IT) 업종 등을 매수하는 전략이 좋다”고 조언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