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경영 의지…이사회에 힘 싣는 SK
SK그룹이 이사회에 힘을 싣고 있다. SK텔레콤과 SK케미칼, SK가스는 대주주나 최고경영자(CEO)가 아니라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에 선임했고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주) 등 주요 계열사는 10억원 이상 후원금을 집행할 때 이사회 의결을 의무화했다. ‘SK그룹의 헌법’으로 불리는 SK경영관리체계(SKMS)에는 ‘이사회 중심 경영’이란 문구를 명시적으로 못박았다. 투명 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최태원 SK 회장(사진)의 의지가 반영됐다.

SK케미칼은 지난 24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관을 바꿨다. ‘이사회 의장은 대표이사가 한다’는 규정을 ‘이사회 의장은 이사회에서 정한다’로 바꿨다. 사외이사도 이사회 의장을 맡을 수 있도록 정관을 고친 것이다.

SK케미칼은 이어 곧바로 열린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인 오영호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전 산업자원부 차관)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이사회 의장은 실질적으로 이사회를 소집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만큼 대주주와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의사결정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SK텔레콤과 SK가스도 이날 이사회에서 각각 사외이사인 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 총장(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을 이사회 의장으로 뽑았다. 두 회사 모두 정관 변경을 통해 사외이사에 이사회 의장을 맡긴 지 꽤 됐다.

게다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사외이사가 이사회 총수의 50%를 넘어야 한다. SK 주요 계열사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SK텔레콤, SK케미칼, SK가스는 여기에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까지 맡으면서 대주주나 경영진을 감시할 수 있는 이사회의 힘이 더 세지게 됐다.

SK 주요 계열사는 후원금이 10억원 이상이면 무조건 이사회 결의를 거친 뒤 이를 외부에 공개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SK는 2015, 2016년 다른 그룹과 마찬가지로 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기업연합회로 개명 예정)가 정한 비율에 따라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금을 냈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면서 이 같은 자금 출연이 문제되자 그룹 차원에서 재발방지책을 마련한 것이다.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그룹 컨트롤타워) 의장이 제도 도입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사외이사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이사회가 대규모 후원금을 심사하면 ‘불투명한 자금 지원’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 외에 삼성도 10억원 이상 후원금에 대해 이사회 의결을 의무화했다.

SK는 이사회 중심 경영을 그룹의 경영 철학에 명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CEO 세미나 이후 SKMS를 개정하면서다. 구체적으로 ‘SK그룹의 각 기업은 이사회를 중심으로 자율·책임 경영을 실천해 나간다’는 문구를 새로 추가했다. 기존 SKMS에는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조하는 문구가 없었다. SK 측은 “기존에도 이사회 멤버의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채울 만큼 이사회의 역할을 중시했지만 이번에 더 명시적으로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SK는 SKMS를 담은 책자의 분량도 82쪽에서 20쪽으로 대폭 줄였다. 과거에는 경영 철학뿐 아니라 세부적인 실천 방향까지 일일이 나열했지만, 이제는 경영 철학만 공유하고 세부적인 실천 방향은 계열사들이 이사회를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취지에서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