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칼럼] 되새겨야 할 정유년의 도전과 응전
다가올 새해는 정유년(丁酉年)이다. 정유년엔 우리가 곱씹고 되새겨야 할 거센 도전과 치열한 응전들이 있었다. 1597년엔 15만명이 넘는 왜군이 쳐들어와 우리 강토를 유린했다. 5년 전 임진왜란을 겪고도 조정은 동인과 서인 등으로 나뉘어 정쟁에 매달리던 때였다.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충무공마저 파직·하옥됐다.

‘칠천해전’에서 패사한 원균의 뒤를 이어 복귀한 충무공이 겨우 배 13척으로 거둔 ‘명량대첩’도 정유년의 일이다. 참혹한 전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영의정 류성룡이 정부의 실책을 《징비록(懲毖錄)》에 남기기도 했지만 그에 담긴 교훈은 잊히고 붕당정치는 격화됐다.

19세기 말 서세동점의 격변기에는 쇄국을 풀고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외줄타기를 하던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되는 치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고종과 왕세자는 1년여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해 거처했다. “이게 나라냐”는 말이 나왔을 법하다. 그 와중에 철도부설권, 삼림 채벌권, 광산 채굴권, 전신선 연결권 등이 무상 또는 헐값으로 외국에 넘어갔다. 정유년이던 1897년 고종은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와 ‘대한제국’을 세우고 황제로 등극했다. 삼한(三韓)을 아우른다는 뜻으로 이때 지은 국호는 ‘대한민국’의 모태가 됐다. 그러자 정쟁이 다시 불거졌다. 독립국 선포에 힘을 모았던 ‘독립협회’와 수구파는 정체(政體) 문제로 대립했다. 독립협회가 입헌군주제(개헌)를 내세우자, 수구파는 전제군주제(호헌)를 고집했다.

독립협회는 촛불집회에 해당하는 ‘만민공동회’를 열어 수구파의 ‘절영도’(부산 영도) 조차 등에 반대하고 6개 항에 걸쳐 자주독립과 내정개혁을 촉구했다. 교통·통신이 불편했던 당시 종로에서 1만명이 엿새나 집회를 계속했다니 참으로 대단한 열기였다. 하지만 수구파 등의 계략으로 독립협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끝내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민족 분단의 비극까지 이어지게 됐다.

나라 바깥에서도 기념비적인 사건이 정유년에 벌어졌다. 1957년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했다. 충격을 받은 미국은 항공우주국(NASA) 신설 등 교육, 과학기술, 군사부문의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고 이는 지구촌 전체로 파급됐다.

요컨대 정유년엔 큰 위기가 찾아오곤 했다. 그러나 그에 맞서 역사의 물길을 바꾼 위대한 여정이 첫걸음을 내딛기도 했다. 동서고금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병존한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반추하고 다른 나라 사례도 눈여겨본다.

내년은 격동기가 될 듯하다. ‘만민공동회’의 뜻에 따라 탄핵 심판이 마무리되면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1987년 헌정체제를 시대정신에 발맞춰 갱신할 수 있을지,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파의 호헌 입장이 관철될지 주목된다. ‘독립협회’의 뜻처럼 자강(自彊)과 동맹의 슬기로운 조화로 안보를 굳건히 하고 통일 주도권을 쥘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한국 경제가 산업화시대 끝자락에서 엉거주춤 주저앉을지, 4차 산업혁명에 합류할지도 관심사다.

60년 전 미국처럼 대한민국도 과감한 혁신으로 또 하나의 기적을 이뤄내야 한다. 다음 세대에도 둘로 쪼개진 한반도, 강대국이 업신여기는 외교, 정쟁으로 얼룩진 정치, ‘최순실 사태’처럼 정부가 좌우하는 경제를 물려줄 수는 없다.

대국민 담화를 한 대통령부터 음주운전 뺑소니 야구선수까지 거짓말을 일삼는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느닷없이 윤리위원을 두 배나 늘려 ‘사사오입 개헌’을 떠올리게 한 사람들은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 정유년의 도전과 응전을 되새기며 새해가 낡은 국가시스템을 개혁해 선진국으로 안착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박재완 < 성균관대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