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을 조건으로 채용한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해고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정규직 전환에 대한 근로자의 ‘기대권’을 법적으로 인정한 첫 판단이다. 비정규직 고용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10일 실업자들의 일자리 지원사업을 하는 ‘함께 일하는 재단’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장모씨는 2010년 10월부터 재단에서 비정규직 기간제 근로자로 일했다. 장씨는 정규직 근로자와 같은 업무를 했고, 재단에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지속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재단은 2012년 9월 장씨에게 “계약 기간이 끝났다”고 통보했다. 장씨는 중노위에 부당해고 구제 재심을 신청했고, 중노위는 이번 사건이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재단은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이번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사용자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을 거절하면 부당해고처럼 효력이 없다”며 “그 이후의 근로관계는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당사자 간 계약 등에 따라 정규직 근로자로 전환하기로 하는 신뢰관계가 형성됐으면 근로자에게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을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다만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 인정돼도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사용자가 정규직 전환을 거절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그동안 이런 사안은 근로계약이 2년 더 연장되는 것으로 주로 해석해왔는데 이번 판결은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는 등 당사자 간 계약을 기간제법 취지에 맞게 엄격하게 적용한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