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스마트폰엔 없는 36.5℃
한국 국민 절반 이상은 식사 때 가족과의 대화 시간이 10분을 채 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원인으로 스마트폰이 꼽혔다. 특히 청소년 자녀를 둔 가정일수록 그 현상은 더욱 심하다.

20년 전의 일이다. 서울 역삼동에서 작은 한의원을 할 때 83세의 할머니 한 분이 오셨다. 할머니가 오실 때면 가족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진료실에 들어왔다. 간호사의 귀띔으로는 할머니가 걸을 수 없어 아들이 업고 2층 계단을 올라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골다공증으로 인해 오래된 압박골절이 여러 군데 있어서 혼자서는 설 수 없었다. 매일 치료를 받으러 오는데 월요일엔 큰아들이, 화요일은 작은아들, 수요일은 큰 사위, 목요일엔 작은 사위…이렇게 돌아가며 가족이 어머니를 업고 와서 치료를 받고 가곤 했다. 옆에서 보더라도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너무 지극 정성이라 대기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도 감동하곤 했다. 6남매 가족은 대기실에서도 서로가 각자의 일상 대화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며 주위 다른 환자들을 즐겁게 하곤 했다.

그 비결에는 어머니의 밥상머리 교육이 있었다고 아들, 딸들은 입을 모았다. 어머니는 가족식사가 끝나도 서로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늘 한 시간이 지나서야 상을 물렸다고 한다. 끈끈한 가족애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어머니는 완전하진 않지만 웬만큼 좋아져서 치료를 종료했다.

15년이 지난 어느 날, 큰아들이 다시 내원했다.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 온 것이다. 어머니의 안부를 물으니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잘 치료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내가 잘 치료해서가 아니라 6남매의 효심이 어머니를 낫게 한 것이라고 했다. 요즘 세상에 이런 효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증상이 심각해 당장 입원치료를 해야 하는 부모님을 앞에 두고 형제끼리 치료비 분담을 먼저 정한 뒤 오겠다며 발길을 돌리는 가족도 있다. 돌이켜보면 경제적으로 먹고살기 힘든 시절의 가족애가 오히려 더 끈끈했던 것 같다. 가족끼리 만나면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함에도 의무적인 대화만 하고 각자 스마트폰만 보니 언제 가족애가 생기고 언제 효심이 생기겠는가. 진정한 대화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눈을 맞추고 호흡을 느끼며 소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준식 < 자생한방병원 이사장 jsshin@jase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