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또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냈다. 공정위는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을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어제 입법 예고했다.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이 되는 자산규모가 5조원으로 지나치게 낮다는 여론의 지적에 따라 경제관계장관회의까지 거쳐 10조원으로 높이겠다고 발표한 지 한 달도 안 돼 새로운 규제를 내놓은 것이다. 당시 규제완화의 성과처럼 포장했지만, 결국 한 달이 못 돼 새로운 이름으로 대기업들을 규제 사정권 안에 그대로 두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공정위는 자산 10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상호·순환출자 금지, 채무보증 금지,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공시의무,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금지 등의 규제를 받고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 기업집단은 이 가운데 공시의무,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금지 등만 적용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자산 10조원을 대기업집단 기준으로 정했으면 됐지, 자산 5조원 이상은 ‘별도 관리’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대기업집단 지정은 그야말로 해묵은 규제다. 1987년 도입 당시엔 자산 4000억원 이상 기업에 적용했고, 1993~2001년엔 자산 상위 30대 기업으로 바꿨다. 이후 2008년까지 자산 2조원 이상이 기준이었고 다시 올초까지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이 대기업집단으로 분류됐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은 물론 38개 관련법까지 규제가 적용된다. 기업들이 규제를 받지 않기 위해 성장을 기피하는 이른바 ‘피터팬 신드롬’ 같은 일이 벌어지는 판이다. 올해도 자산 5조원이 그대로 적용돼 6개 기업집단이 새로 지정되자 비난 여론이 비등했지만 공정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박근혜 대통령이 4월 말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고 언급한 뒤 규제를 푸는 쪽으로 반전하는 듯하더니 결국 여지없이 자산 5조원 이상의 준(準)대기업 규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자산 기준이 10조원으로 상향되면서 65개이던 대기업집단 수가 28개로 줄었다. 공정위는 일감이 줄어든 것이 아쉬워 새로운 규제로 만회해보겠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