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국의 탈퇴. 이제 EU가 개혁의 기로에 섰다
영국인들이 결국 브렉시트(Brexit)를 선택했다. 382개 영국 내 선거구에서 실시된 이번 투표에 참여한 3355만명 가운데 1742만명(51.9%)이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브렉시트 반대를 3.8%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영국인은 2차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의사결정을 내린 셈이다. 어떤 이들은 16세기 헨리 8세의 로마 가톨릭 탈퇴 이후 500년 만의 브렉시트라고도 불렀다. 영국인들은 당장의 경제적 충격보다 EU 체제에 양보했던 국가의 결정권을 되찾고 시장경제 체제를 회복하는 데 한 표를 던졌다.

브렉시트는 EU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탈퇴 도미노를 점치는 것은 극단적인 견해라고 하더라도 덴마크 네덜란드 헝가리 체코 프랑스 등의 국내 정치에도 심각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 확실하다. 독일의 지위 등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EU의 개혁이 다급해졌고 유럽을 둘러싼 세계 정치지형이 요동칠 가능성도 예상된다.

금융시장 충격은 오래 안 간다

브렉시트는 세계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던졌다. 대부분 국가들의 증시는 크게 떨어졌고 외환시장도 요동쳤다. 일본 엔화는 장중 한때 달러당 100엔대를 돌파하는 초(超)엔고 현상을 보였다. 한국의 코스피지수도 3.09% 급락한 1925.24에 마감했다. 유가가 하락하고 금값은 크게 올랐다. 당장 지구촌에 브렉시트발(發) 금융위기설이 크게 번지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증시는 파국적 하락을 보여주고 있다. 브렉시트의 금융 충격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럽 지형변화가 불러오는 금융질서의 변화는 일정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패닉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EU 집행부에 대한 반발 확산된다

브렉시트는 무엇보다 사회주의 유럽체제에 대한 냉엄한 심판이었다. 20세기 후반 유럽을 휩쓴 사회적 공동체에 대한 이상의 실현이 EU였다. 하지만 EU는 갈수록 권한과 조직을 키워나갔으며 관료체제에 물들어갔다. 후진적인 법률과 개입주의적 규제만 양산했다. 개별 국가로서는 스스로 법률을 만들지 못하고 EU의 법에 기속된다는 것은 크나큰 정치적 속박이었다. 영국인들은 EU에 남아 EU를 개혁하는 것보다 오히려 영국이 직접 중국 인도 등과 자유무역협상을 벌여 가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탈퇴 협상에 유럽 정치 달렸다

이민 문제도 논란을 불렀다. 영국인들은 최근의 이민 사태가 EU 체제의 허약함 때문에 더욱 심화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20년으로 예정된 터키의 EU 가입 등은 본격적으로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

이번 투표로 당장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것은 아니다. 브렉시트가 실현되려면 리스본 조약 제50조에 따라 앞으로 2년 동안 EU 참가국 27개국과 무역, 주민이동, 런던시티의 금융규제 등에 대해 협상해야 한다. 또 협상 결과는 회원국과 EU의회의 비준을 차례로 받아야 한다.

하지만 관료주의적 EU체제를 혐오하는 모든 유럽국가들에 미치는 파장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EU 탈퇴 바람이 불고 있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는 “프랑스는 영국보다 EU를 떠날 이유가 1000개나 더 있다”고 말하고 있다. 덴마크나 핀란드 등도 들썩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렉시트’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영국 내 문제도 심각하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니콜라 스터전 수반은 어제 브렉시트가 확정되면서 ‘스코틀랜드도 영국에서 독립을 추진할 방침’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NATO 약화 등 우려되는 부분도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당장 군사 안보 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옌스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은 엊그제 EU의 결속이 약화되고 쪼개지면 그만큼 NATO의 파워도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브렉시트에 따라 테러리스트나 러시아의 위협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마당이다. 체코 등은 벌써 러시아와의 협력을 말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러시아가 브렉시트를 EU의 약화가 아니라 서구의 약화로 인식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 역시 기회를 탐색하는 상황이다. 구심력의 시대가 끝나고 원심력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이는 미국 내 내셔널리즘의 부상, 트럼프의 등장과도 맞물려 있다.

독일의 선택에 비상한 주목

이번 브렉시트 표결은 단순히 이민자 문제나 규제만은 아니다. 사회주의화하는 유럽 정치의 이념적 지형에 대한 반대요 거부였다. 1960년대 이후 착착 사회주의적 ‘통합 EU’를 추진해왔던 큰 흐름이 이번 브렉시트를 계기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을 것인가. 유럽은 이미 오랜 불황지대로 바뀌고 있다. 경제적 정체가 깊어지고 사회발전은 서서히 멈추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독일의 선택이 주목된다.

독일은 ‘슈뢰더 노동개혁’을 통해 나홀로 호황을 구가해왔다. 지금 프랑스는 노동개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파리 시내는 브렉시트가 아니라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데모대로 온통 엉망인 상황이다. 늙은 국가들의 이런 고뇌가 읽힌다. 스스로 개혁의 전기를 만들지 못하면 유럽은 정치 안정을 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영국이 아니라 EU가 개혁의 기로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