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출신 공연단 ‘통일아리랑예술단’이 5일 서울 상계동 시립양로원에서 장구를 치며 춤추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탈북자 출신 공연단 ‘통일아리랑예술단’이 5일 서울 상계동 시립양로원에서 장구를 치며 춤추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설 연휴를 하루 앞둔 5일 오후 서울 상계동 시립수락양로원에선 흥겨운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명절이 되면 더욱 쓸쓸함을 느낀다는 이곳 어르신들도 이날만큼은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신 손뼉을 쳤다.

양로원의 어르신을 즐겁게 해준 주인공은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온 북한이탈주민(탈북자)들이었다. 군인 출신 탈북자로 구성된 북한인민해방전선과 숭의동지회 등 회원 20여명은 이날 하루 양로원에서 봉사하며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행사를 준비한 최정훈 북한인민해방전선 대표는 “우리가 빈손으로 대한민국에 넘어와 과분하게 많은 혜택을 누렸는데 이제는 그걸 조금이나마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인덕 숭의동지회 회장도 “여기 어르신들은 6·25전쟁과 산업화·민주화시대를 거쳐 지금의 나라를 일군 주역들”이라며 “짧은 시간이나마 이분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우리의 도리”라고 강조했다.

이날 회원들은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마련한 북한식 떡과 과일 등 음식을 어르신들에게 대접했다. 탈북자 출신 공연단 ‘통일아리랑예술단’은 북한 가요 ‘반갑습니다’와 전통 민요 ‘쾌지나칭칭나네’ 등을 불러 어르신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르신들이 평소 좋아하는 트로트를 함께 부르며 흥겨운 춤사위도 선보였다.

2007년 홀로 남한에 온 이미경 씨(38)는 “명절에 친정어머니를 찾아뵌다는 마음으로 양로원에 왔다”고 했다. 이씨는 “북한에서도 설날이 되면 가족들이 모여 윷놀이를 하고 가족사진도 찍곤 한다”며 “가끔은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 생각에 외로움도 많이 느끼는데 여기 계신 어르신들과 함께 달래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기철 씨(39)는 “‘북에서 와서 고생이 많을 텐데 여기까지 찾아줘 고맙다’는 한 어르신의 말씀이 참 고마웠다”며 “남쪽에 처음 왔을 땐 사기도 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봉사하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물론 모든 탈북자가 이처럼 따뜻하고 특별한 설 연휴를 맞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탈북자는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쓸쓸한 명절을 보낸다. 2010년 남한에 온 김동주 씨(34)는 “얼마 전만 해도 설날이 가까워지면 꿈속에서 북에 있는 부모님과 오빠들이 아른거려 무척 힘들었다”며 “이번 연휴엔 친구들과 함께 스키장에 가 외로움을 이겨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2014년 탈북한 최향미 씨(27)는 “‘북에서 온 네가 뭘 아느냐’는 식의 편견이 담긴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며 “빨리 통일이 돼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