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문화재청의 '이상한' 서울역고가 심의
“4개월 동안 현장 한 번 가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서울역 일대 경관을 바꿀 중요한 심의를 하는데도….” 25일 기자가 만난 한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이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는 서울시가 서울역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제출한 옛 서울역사(驛舍) 현상변경 허가 신청안에 대해 지난 24일 보류 결정을 내렸다. 옛 서울역사는 사적 제284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고가 공원화 사업을 진행하려면 문화재위원회 심의와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문화재위는 위원들이 서울역 일대를 가보지 않아 추후 현장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서울시의 신청안을 보류했다. 윤인석 근대문화재분과위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본격적인 심의에 앞서 우선 현장에 가봐야 심의를 할 수 있다는 위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서울역고가 공원화 사업에 대해 문화재위가 제동을 걸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화재위는 지난 7월 “서울역고가 진입로와 시설물이 옛 서울역사를 가려 경관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신청안을 부결했다. 이어 지난 9월엔 고가 바닥판 철거 계획안에 대해 구체적인 보강 설계안을 요구하며 보류시켰다.

문화재청은 지난 5월 현 근대문화재분과 위원 7명을 위촉했다. 지난 7월과 9월에 이어 지난 24일 열린 심의위원회에 참석한 위원들이 모두 동일 인물이라는 의미다. 문화재위가 이번에 밝힌 ‘현장에 가보지 않았다’는 보류 이유대로라면 지난 7월에 부결시킨 원인에 대해선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경관을 가린다는 이유로 부결시켰다는 얘기가 될 수 있어서다.

문화재위가 해당 안건을 신중하게 처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서울역고가 공원화는 서울역 일대 경관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사업임에도 심의위원들이 4개월간 현장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다음달 13일 차량 통행이 금지되는 서울역고가는 이달 말 서울지방경찰청의 교통대책 심의를 앞두고 있다. 문화재청과 경찰 모두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해 심의하면 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