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그림 월 5~7점 그려 수억원에 팔았다"
위작범들은 2011년부터 이우환 화백(79)의 위작을 제작해 시중에서 거래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미술품 위작 기술자 현모씨와 이모씨는 2011년 5월부터 이 화백 작품을 연구하며 모사 연습을 시작했다. 이들은 그해 8월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는 미술품 유통상 이모씨를 만나 위작 유통과 자금 문제 등을 협의했다. 미술품 유통상인 이씨는 부산 등지에서 미술품을 유통하는 등 국내에도 판매처가 있었다. ‘판로’를 개척한 현씨 등은 이듬해 1월부터 2013년 1월까지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위작을 제작했다. 이들이 제작한 위작은 월평균 5~7점 정도였다. 경찰 관계자는 “위작을 80여점 정도로 보고 있지만 화랑가에선 100점이 넘는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현씨 등은 경찰 수사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일본으로 도피했다. 경찰은 인터폴을 통해 이들을 수배했다. 유통상 이씨 외에 위작 유통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화랑과 브로커가 있는지도 수사의 초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초기에 언론에서 관련 기사가 흘러나오며 유력 용의자들이 상당수 잠적한 상황”이라며 “피해자 스스로 피해를 밝히길 꺼리는 위작 범죄의 특성상 유통된 위작 규모를 가리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라고 했다.

23억원에 낙찰된 이우환의 ‘점’
23억원에 낙찰된 이우환의 ‘점’
이우환 화백은 국내 미술시장의 대표적인 ‘블루칩’ 작가다. 일본과 미국, 유럽에선 설치미술가로 잘 알려졌지만 국내에선 회화로 유명하다. 그의 추상화는 1970년대 ‘점’ ‘선’ 시리즈로 시작해 1980년대 ‘바람’ 시리즈,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조응’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 주드폼미술관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13년에는 파리 베르사유궁전에서 초대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국내 생존 작가 중 그림값이 가장 비싼 그의 작품은 2013년 초 가짜 의혹이 제기되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 화랑가에서 100호(130×160㎝) 크기의 1970년대 작품 ‘선’과 ‘점’ 시리즈가 3억~5억원을 호가했다. 국내외 경매시장에서 점당 10억원 이상에 낙찰된 그림도 6점이다. 그의 1977년작 ‘점’(291×162.1㎝)은 2012년 11월 서울옥션의 홍콩 경매에서 196만1181만달러(약 23억원·수수료 포함)에 팔려 자신의 낙찰최고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점’과 ‘선’ 시리즈의 일부 작품에 대해 위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거래가 끊기고 가격도 약세다.

미술계에선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이 화백 작품과 관련한 위작 유통 수사는 결과에 따라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유통된 작품이 위작으로 판명되면 환매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며 위작 논란이 미술품 유통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것을 우려했다. 정종현 갤러리 미즈 대표도 “수사 결과가 나와 시시비비가 가려질 때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명백하게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외국 유명 화랑들이 한국 단색화를 조명하는 전시를 여는 등 국내외에서 이어지고 있는 단색화 열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단색화가 국내외에서 각광받고 있는데 수사 결과에 따라선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며 “작가가 ‘위작이 없다’고 하는 상황이라면 작품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도 감정으로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경갑/박상용/김동현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