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브로커에 놀아난 '묻지마 전세대출 심사'
‘이형진 님(30), 대출이자 89만원이 연체됐습니다-K저축은행.’ 오늘만 세 번째 독촉 문자다. 식은땀이 쭉 흘렀다. 벌써 네 번이나 밀렸는데…. 스트레스에 체증이 날 때, 자주 가던 S은행 직원인 김형(43)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인한테 고급 정보를 들었는데…. 돈 400만원을 맡기면 한 달 만에 500만원으로 불려준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전 직장동료라는 박 팀장을 소개받았다. “아주 간단해요. 형진씨 집에 세입자가 들어오는 것처럼 전세계약서를 작성하고 은행에 가서 전세자금대출을 받는 거예요. 대출금의 10%를 떼줄게요. 앉아서 돈 버는 거죠.”

박 팀장은 인터넷을 통해 세입자 역할을 할 오민영 씨(32)를 섭외해 소개했다. 2013년 4월, 오씨는 박 팀장이 꾸며준 전세계약서 등 서류를 들고 경기 용인시에 있는 국민은행의 한 지점을 찾았다. “서민전세자금 대출은 서류심사가 허술해. 임차인이 은행에 돈을 안 갚아도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90% 보증을 서주거든. 손해를 봐야 10% 수준이니 심사를 형식적으로만 하는 경우가 많아.” 박 팀장은 확신에 차 있었다. 심사는 당일에 통과됐다. 국민은행 계좌에 4000만원이 입금됐다. 수수료 400만원을 뺀 나머지 3600만원을 김형에게 송금했다.

김형에게 다시 연락이 온 건 반 년 만이었다. “6개월 지났으니 작업을 한 번 더 할 수 있겠는데.” 승낙했다. 박 팀장과 김형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대출을 신청한 선은정 씨(30)와 정한우 씨(26)를 데려왔다. “이번엔 신혼부부야.” 김형은 “두 사람은 생면부지”라고 귀띔했다. 그는 “여자한텐 나이가 어려서 대출받기 어려우니 위장결혼을 하라고 했고, 남자한텐 신용불량자라 대출받기 어려우니 가짜 혼인신고를 하면 100만원을 떼어주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2013년 10월 인천의 한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냈다. 김형은 말했다. “3개월 안에 이혼하면 기록에 남지 않는다고 거짓말했거든. 물론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 법원에서 혼인무효소송을 청구해 이기면 되니까.”

몇 주 뒤 우리은행 통장엔 대출금 3000만원이 입금됐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이듬해 검찰 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 12일 오씨를 사기 혐의로 징역 6월에, 정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벌금 300만원에 처했다. 법원은 지난해 11월 이씨와 김씨를 사기 혐의로 각각 징역 8월에, 선씨를 사기 등 혐의로 징역 6월에 처했다.

검찰은 지난 4월 허위서류로 160억원 상당의 전세자금 대출을 가로챈 사기단 등 250여명을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