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두배로 쳐줄게 회사 넘겨라" 저커버그 제안도 거부한 당찬 20대
최근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정보기술(IT)업계의 젊은 억만장자 순위를 발표했다. 1위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도, 트래비스 칼라닉 우버 창업자도 아니었다. 순자산만 15억달러(약 1조6430억원)인 에반 스피겔 스냅챗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였다. 24세로 최연소 억만장자에 올랐다.

스피겔 CEO는 2013년 저커버그 CEO가 인수 제안을 했을 때 단칼에 거절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주식 교환도 아닌 전액 현금 인수 조건이었다. 인수 제안 가격은 30억달러에 달했다. 설립한 지 2년밖에 안 된 당시 스냅챗의 기업가치는 15억달러에 불과했다. 스냅챗의 성장성과 사업성에 그만큼 자신이 있단 얘기였다. 그를 두고 “제정신이 아니다” “건방지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페이스북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지 2년이 흘렀다. IT업계에서는 “스피겔 CEO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상류층 청소년에서 15억달러 자산가로

"가격 두배로 쳐줄게 회사 넘겨라" 저커버그 제안도 거부한 당찬 20대
지난 3월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는 스냅챗에 2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때 시장에서 추산한 스냅챗의 기업 가치는 190억달러였다. 설립한 지 4년 만이었다.

2011년 설립된 스냅챗은 보안을 강화한 모바일 메신저다. 정해진 시간 뒤 메시지가 자동 삭제된다. 비밀이 보장된다는 장점으로 인해 미국 10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하루 4억개의 메시지와 사진이 스냅챗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페이스북이 인수한 모바일 사진 공유 애플리케이션(앱)인 인스타그램을 뛰어넘는다.

빠른 성장세만큼 스피겔 CEO는 항상 자신 있고 당당했다. 미국의 한 행사장에서는 “나는 젊은 백인이다. 교육까지 잘 받았다.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사실 삶은 공평하지 않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실제 그는 미국의 전형적인 상류층 삶을 살았다. 그의 가족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부촌에서 살았다. 재벌까지는 아니었지만 변호사 부모 밑에서 남 부럽지 않은 삶을 누렸다. 10대부터 고급 자동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청소년 시절 그의 가족이 보유한 고급 자동차만 5대였다. 스피겔 CEO는 상류층 친구들과 모임을 꾸려 유럽과 전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헬리콥터를 타거나 스노보드를 타는 게 취미였다. 스냅챗으로 돈을 번 뒤 가장 먼저 한 일도 고급 자동차 페라리를 산 것이었다.

그는 청소년 시절 부모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좀 더 좋은 자동차를 사달라고 요구하는 등 나이에 비해 과한 소비 형태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그의 낭비벽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스피겔 CEO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청소년 시절 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행복했기 때문에 학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 당당하게 대응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학업 성적이 우수했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스피겔 CEO는 청소년 시절 창의적이고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스탠퍼드대에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입학했다.

사교 모임에서 출발…대선까지 영향력 확대

스냅챗의 시작도 스탠퍼드대에서 이뤄졌다. 스피겔 CEO는 백인 학생이 중심이 된 사교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설정한 시간이 지나면 사진이나 메시지가 알아서 사라지는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냈다. 그들과 합심해 스냅챗의 전신인 ‘피카부’를 개발했다. 창업을 결심하고 나서는 바로 학교를 중퇴했다.

서비스 초반에는 음란 사진 공유를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하지만 메신저 보안 문제가 전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스냅챗의 인기는 오히려 높아졌다. 전 세계 월간 이용자는 2억만명에 이른다.

페이스북, 구글 등의 인수 제안을 잇따라 거절한 스피겔 CEO는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광고를 기반으로 하는 미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는 차별화된 수익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작년 말에는 모바일결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스퀘어와 함께 전자결제 서비스를 선보였다. 올 들어서는 워너뮤직 등 글로벌 미디어 업체와 선별된 음악과 뉴스 등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뉴욕타임스는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스냅챗의 영향력이 클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스냅챗이 지난달 뉴스 부서를 신설한 것을 두고서다.

2008년 대선 때는 폴리티코와 허핑턴포스트라는 신생 온라인 매체가 선거 현장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2012년 대선 때는 버즈피드라는 온라인 매체가 선거 현장을 다룬 빠르고 신선한 뉴스로 돌풍을 일으켰다. 뉴욕타임스는 “스냅챗이 밝은색, 선명한 사진, 다량의 동영상을 앞세워 대선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면 막강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피겔 CEO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으로 스냅챗 같은 아이디어를 내거나 사업을 시도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단기적인 이익을 위한 거래가 아닌 큰 사업을 보고 움직이겠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