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투자했다가 운용사 측의 수익률 조작 의심 행위로 손해를 본 개미 투자자들에게 ‘증권 관련 집단소송’을 허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증권 집단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투자자 양모씨와 최모씨가 “캐나다 최대 상업은행인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 등에 대한 집단소송을 허가해 달라”고 신청한 사건에서 “집단소송을 불허한다”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발표했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은 허위공시 시세조종 등 불법 행위로 피해를 본 소액투자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법원의 허락을 얻어 소송을 진행하고 이후 판결이 나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에게까지 모두 효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양씨 등은 2008년 한화증권이 발행한 ‘한화스마트 ELS 제10호’에 투자했다. 이 상품은 1년 후 만기가 왔을 때 SK 보통주가 기준가격의 75%(당시 주당 11만9625원) 아래로 내려가 있지 않으면 액면가에 연 22%의 수익을 더해 되돌려주는 구조다. 그런데 만기상환 기준일 장 마감 10분 전부터 SK 보통주 매물이 대거 쏟아지며 주가가 급락했다. 결국 SK 보통주는 11만9000원에 장을 마쳤고 이 상품 투자자는 만기상환 조건 무산으로 원금의 25.4%를 손실봤다. 이 상품 발행액은 합계 68억7660만원이고 투자자는 437명이다.

한화증권은 만기상환 조건이 성사됐을 때를 대비해 보험 성격의 스와프 계약을 RBC와 맺은 상태였다. 요컨대 조건이 무산되면 RBC가 이익을 보는 구조였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상품을 실질적으로 운용한 RBC가 의도적으로 SK 보통주 물량을 팔아 조건 성사를 무산시켰다는 얘기가 나왔다. 조사에 착수한 금융감독원은 “수익률 조작 의혹이 있다”고 결론지었고 양씨 등은 집단소송 허가 신청을 냈다.

1심과 2심은 “현행법상 시세조종 이후의 거래로 손해를 본 경우에만 집단소송을 할 수 있다”며 “이미 상품을 보유했던 양씨 등은 소송 요건이 안 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특정 시점의 기초자산 등에 조건 성취가 결정되는 상품의 경우 사회 통념상 부정한 수단이나 기교로 조건 성취에 영향을 줬다면 이는 부정 거래 행위”라며 “이 때문에 투자자가 손해를 입었다면 시세조종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3조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3조는 ‘자본시장법 179조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집단소송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자본시장법 179조는 ‘증권 관련 부정 거래행위를 한 자는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기초자산 가격에 따라 상환금 지급이 결정되는 금융투자 상품은 거래 이후에도 시세를 조종하거나 조건 성취를 방해해 이익을 도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이 지금까지 집단소송 허가 사건 판결을 차일피일 미루는 등 소극적인 면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전향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주가연계증권(ELS)

equity linked securities.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유가증권. 2003년 증권거래법 시행령에 따라 상품화됐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