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6@hankyung.com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6@hankyung.com
대기업 기획팀에 지난해 말 입사한 신입사원 김모씨는 얼마 전까지 동료들 사이에 변비 때문에 고생하는 것으로 소문났다. 화장실에 한 번 들어가면 최소 15분은 걸렸기 때문이다. 그의 변비 증상은 날씨가 포근해진 이달 초부터 더욱 심해졌다. 하루에 두세 번 화장실을 다녀오는 시간을 합하면 최대 한 시간에 달했다.

[金과장 & 李대리] 춘곤증, 참을 수 없는 낮잠의 유혹
어느 날 오전 화장실에 들른 김씨의 사수 최 대리는 맨 왼쪽 칸의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을 살짝 닫아주려는 찰나 최 대리의 귀에 크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틈으로 보니 신입사원 김씨가 변기에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변비는 헛소문일 뿐, 쏟아지는 낮잠을 자기 위해 변비로 위장한 채 화장실을 찾았다는 게 김씨의 고백이었다. 신입사원이다 보니 점심시간 때조차 편하게 낮잠을 자지 못해 이 같은 해프닝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후 김씨는 한동안 화장실에 갈 때마다 사수인 최 대리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직장 상사들에게 거짓말한 신입사원이 괘씸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졸리고 눈치가 보였으면 그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잤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막바지 꽃샘추위, 황사 바람과 함께 어김없이 찾아온 춘곤증. 시도 때도 없이 졸리고 나른한 춘곤증을 이겨내기 위한 김과장 이대리들의 사투도 만만치 않다.

나른한 1시30분, ‘학구파’ 변신은 무죄

금융회사에서 대외협력 업무를 맡고 있는 홍모 대리는 사내에서 싹싹하고 일 잘하기로 소문난 인재다. 파이팅 넘치는 홍 대리지만 그에게도 약점이 있다. 점심식사 후 1~2시간 내에 찾아오는 졸음이 문제다. 평소에도 유난히 잠이 많은 홍 대리는 날씨가 풀리는 봄철이 되면서 더 고생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찾아낸 방법은 ‘위장술’이다. 자리에 앉아있을 때 잠이 오면 갑자기 휴대폰을 들고 실무부서에 궁금한 것을 문의하는 것처럼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손에 한두 장 서류를 들고 나가는 것은 기본이다. 실무부서에 뭔가를 물어보는 것처럼 상사나 동료들이 느끼게 할 뿐 실제로 전화를 걸지는 않는다. 실무 부서에서 나온 자료를 그대로 외부에 내보내지 않고 다시 확인하거나 수시로 공부하는 듯한 느낌을 주려는 목적이다.

물론 그렇게 통화하는 것처럼 나가서는 바람을 쐬고 돌아온다. “그냥 조용히 나가면 뭔가 땡땡이치는 것 같잖아요. ‘업무상 통화를 하러 나가는구나’라는 느낌을 주면서 졸린 시간을 이겨내는 일종의 위장술이랍니다.” 매사 꼼꼼하고 열정적이라는 평판은 덤으로 얻는 선물이다.

20년 상사맨의 비결은 ‘낮잠’

종합상사에서 일하는 김모 과장은 최근 졸음에 시달리고 있다. 해외 시간과 맞추려면 매일 새벽별을 보며 출근해 해외 신문부터 모니터링해야 한다. 통화를 하다 보면 점심은 거르기 일쑤고 야근 강행군에 몸은 천근만근이다.

그런데도 같은 팀에서 근무하는 20년차 상사인 이모 부장은 조금도 피곤한 기색 없이 쌩쌩하다는 게 신기하다. 김 대리는 관찰 끝에 이 부장이 저녁 회의가 끝나는 오후 6시30분부터 무조건 1시간30분 이상 자리를 비운다는 것을 알았다. 이 부장의 외유를 놓고 직원들은 “숨겨둔 애인을 만나고 온다”거나 “사우나에 다녀온다”며 억측이 난무했다. 결국 김 과장은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이 부장에게 ‘어디에 다녀오십니까’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이 부장은 껄껄 웃으며 사실을 말해줬다.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은 굶거나 가볍게 저녁을 먹고 간단한 운동을 마친 뒤 차 안에서 쪽잠을 청한다는 것. 그날 피로도에 따라 필요한 만큼 ‘저녁잠’을 자는 게 이 부장이 20년 상사맨으로 버텨낸 비결이었다. 더욱이 주차장 구석에서 자면 조명에 시달리지 않아도 돼 좀더 편안한 잠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이 부장의 설명이었다.

회사 강당에서 몰래 낮잠
[金과장 & 李대리] 춘곤증, 참을 수 없는 낮잠의 유혹

금융관련 협회에 다니는 박모 차장은 얼마 전부터 새벽에 일어나 고교 3학년 딸을 매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있다. 이렇다 보니 오후 2~3시 정도만 되면 졸음이 쏟아진다. 책상 앞에서 꾸벅꾸벅 졸 때가 많다. 처음엔 “고3 학부모는 원래 힘들다”며 이해하던 부장도 보름 넘게 박 차장의 졸음을 목격하다 보니 점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참는데도 한계가 있는 법.

그때 퍼뜩 박 차장의 머리를 스친 게 회사 강당이었다. 그 강당은 1주일에 두 번 정도 외부 행사가 있어 문을 잠가두지 않는다. 행사가 없는 날엔 조명도 안 들어오고 사람도 없어 남몰래 20분 정도 잠을 청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화장실 가는 척하고 나와서 알람을 맞춰놓고 20분 정도 청하는 잠이 정말 꿀맛입니다. 완전히 피로를 풀 수는 없지만 한잠 자고 올라가면 효율적이죠.”

낮잠 자려고 외톨이 자청

건설회사에 다니는 김모씨는 평소 낮잠을 자지 않으면 오후에 일을 못할 정도로 피곤해한다. 하지만 한 시간에 불과한 점심시간 동안 식당에서 줄 서고, 밥 먹고, 커피 한 잔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는 게 김씨의 고충이다. 오후 업무를 위해서라도 점심시간에 꼭 눈을 붙여야 하는 김씨는 결국 혼자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업무시간 틈틈이 편의점에 내려가 도시락이나 삼각김밥 등을 사다놓는 게 그의 습관이다.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준비한 음식을 책상 앞에서 바로 먹고 낮잠을 청한다. 주변 동료들은 이 같은 그의 습관을 나무라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고 있다. “점심시간만이라도 제 마음대로 쓰고 싶습니다. 업무를 더욱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니 상관없지 않을까요.”

■ 특별취재팀

박수진 산업부 차장(팀장) 안정락(IT과학부) 황정수(증권부) 김은정(국제부) 강현우(산업부) 강경민(지식사회부) 임현우(생활경제부) 김대훈(정치부) 김동현(건설부동산부) 김인선(문화스포츠부) 추가영(중소기업부) 기자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