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 한국여성벤처협회장(테르텐 대표)은 서울 구로동 테르텐 본사에서 “여성벤처기업의 해외 판로 개척을 돕고 경영 환경을 개선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이영 한국여성벤처협회장(테르텐 대표)은 서울 구로동 테르텐 본사에서 “여성벤처기업의 해외 판로 개척을 돕고 경영 환경을 개선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KAIST에서 암호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친 이영 테르텐 대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정보기술(IT) 보안업계에 뛰어든 여성 최고경영자(CEO)다. 2000년 남편과 함께 테르텐을 창업해 공동대표로 일해 온 이 대표는 지난달 말 제9대 한국여성벤처협회장에 선출됐다.

◆“남녀평등 자연스레 배워”

이 회장은 어릴 적부터 남녀평등을 배우며 자랐다. 6·25전쟁 때 황해도에서 월남해 정착한 이 회장의 부친은 10대 때부터 미군 부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만난 미국인 군인을 양아버지로 모시면서 ‘남녀는 평등하다’는 사고방식을 갖게 됐다. 이 회장은 “친구들이 ‘아버지가 누워 계실 때 발로 건너가면 안 되고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고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자유분방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여성 벤처기업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단순히 성별 때문에 차별을 받아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학연, 지연 등 다양한 면에서 남성이 강점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 기업인 자신이 ‘과연 내가 기업가 정신을 갖고 있는 CEO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코브와’ 등 3대 과제 추진

이 회장은 2년 임기 동안 3대 과제를 실행하기로 했다. 첫째, 정책 제도 등 환경을 개선하고 둘째, 벤처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 셋째, 지방 지회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회장 임기 동안 문제점을 전부 개선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뒤를 이어갈 여성벤처기업인들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 회장이 우선 추진한 것은 중국 진출이다. 중국 최대 직접구매사이트인 IJP와 여성벤처협회가 오는 13일 계약을 맺고 국내 우수 여성벤처기업 5개를 선발해 ‘코브와(KVBWA·Korea Venture Business Women’s Association)’라는 브랜드로 중국 판로 개척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일단 5개 여성벤처기업을 중국 전역에 무상으로 진출시키고 판매 수수료도 5%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내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을 중국에 진출시킬 것”이라며 “단순히 ‘여성도 사업을 잘하네’가 아니라 ‘기업가 정신이 있는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벤처기업, 현실 직시해야”

15년째 벤처기업을 이끌면서 느낀 점에 대해 그는 “KAIST에서 미국 실리콘밸리 사례를 중심으로 공부할 때 느꼈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라고 했다. “실리콘밸리에선 기술력만 갖추면 투자자들이 자연스레 붙고 분업화 전문화가 이뤄지는 반면 한국에선 엔젤 투자자도 없고 완제품의 제조, 마케팅, 판매 등을 모두 도맡아 해야 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해외판로 개척을 비롯해 정부에 지원책 개선을 요청하는 등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회장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