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셔먼 차관 발언에 담긴 미 아시아 전략
“셔먼의 발언이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한·중·일이 과거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덮고 가자’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논란을 불러오자 워싱턴의 한 정치 소식통은 “셔먼의 말 실수가 아니라 미국의 본심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작년 말부터 미 국무부 관리들은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삼각동맹이 삐걱거려 미국으로서도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셔먼의 발언을 보면 인권과 같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가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잣대로 중재하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전략에서 최대 과제는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는 일이다.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일본을 어렵게 끌어들인 것은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일본 자위대의 역할 확대에 눈을 감아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덜 협조적’이란 게 워싱턴 외교가의 평가다. 2013년 초 미국이 한국에 TPP 참여를 강하게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는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더 급하다며 거부했다. 북한 위협에 대비해 ‘사드(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한반도에 배치할 필요가 있다는 미국 측 요구에 대해서도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엔 사드 배치로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 워싱턴의 한 로펌 관계자는 “냉정히 따져보면 미국의 국익에 한국과 일본 누가 더 중요하겠느냐”며 “국익 앞에 인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최근 기사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 인도 사이에 새로운 삼각동맹이 형성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호주를 포함해 4자 협력관계로 발전돼 ‘아시아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구상이 실현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에 물 샐 틈이 없다”고 강조하지만 워싱턴 외교가의 평가와는 온도 차이가 있다.

장진모 워싱턴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