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노후생활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허풍
연말 식사모임에서 대기업 부장인 졸업생으로부터 가슴 아픈 얘기를 들었다. 신입사원 때 모셨던 퇴직임원이 인근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더라는 것이다. 대면하면 무안할 것 같아 일부러 멀리 돌아다닌단다. 운전기사가 딸린 회사차를 타던 분이 주민 차량을 운전해 주차시키기 힘들 것이라며 걱정했다.

유럽에서 장거리 열차를 타면 노년 부부 여행객을 많이 만난다. 선진국 출신이 많다. 그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근무했던 직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연금펀드에 자사 주식이 많이 편입돼 있기 때문에 회사 실적이 좋으면 자신이 받는 퇴직연금도 올라간다며 자랑했다.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른 2012년, 정치권이 국민 노후생활 불안을 들쑤셨다. 무상복지를 띄웠고 기초연금을 부풀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수위원회 단계부터 공약가계부를 앞세워 지출 규모를 상당히 줄였다. 그러나 세수 맞추기는 여전히 어렵다. 경기 침체로 세수 결손은 매년 반복됐고 작년에는 11조원을 넘어섰다.

2013년 8월 정부가 연소득 3450만원 초과 구간부터 세금 부담을 늘리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대국민 사과와 함께 5500만원까지는 세금이 늘지 않도록 조정했다며 수정안을 내놨다. 그러나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뀐 부분에 대한 홍보가 불충분했고 작금의 ‘연말정산 분노’가 촉발됐다.

모든 국민이 몰랐던 것은 아니다. 세금 혜택이 줄어든 작년에는 연금저축 신규계약이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기부금 쇼크’는 더 심각하다. 최고세율 구간의 경우 1000만원을 기부하면 종전 소득공제 방식에서는 380만원의 소득세가 줄어든다. 그러나 세액공제 방식 세금 혜택은 150만원이다. 기부금이 줄 수밖에 없다. 고액소득자 기부금을 장학재원으로 쓰는 대학과 교인 헌금에 의존하는 종교단체 2014년 결산서의 붉은 글씨가 개봉박두다.

여당이 부랴부랴 내놓은 연말정산 개선안이 소급되면 3000억원 정도 환급이 예상된다. 소급 논란도 있지만 연금저축의 경우 작년 이전 가입자에 대한 세금 혜택이 소급적으로 축소된 점도 감안해야 한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부담의 지속적 증가로 2033년에는 국가 파산이 우려된다는 국회 예산정책처 경고도 터져 나왔다. 야권에서는 법인세 증세를 주장하고 일부 학자는 부가가치세 인상을 들고 나온다.

이명박 정부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했지만 비과세·감면 축소와 최저한세 인상으로 효과는 상쇄됐다. 금년부터는 기업소득환류세도 신설됐다. 경쟁국 모두 법인세를 인하하는데 우리만 홀로 인상하면 국내 투자와 일자리 위축을 감당할 수 없다.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의 폭발력은 짐작만으로도 끔찍하다.

공적연금에 의존하던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재정파탄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가 노후생활을 책임질 것 같은 국민연금 권유 공익광고가 오래 유지됐었다. 최근에는 공무원노조가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워 ‘공적연금지출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최하 수준’이라는 유료광고를 공익광고처럼 방영하고 있다.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개혁안에 대한 반발이지만 공적 연금의 문제점을 홍보하는 효과도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저출산으로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공적 연금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위험하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으로 대비해야 한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납입액은 당장의 수입을 포기하고 미래에 받는 것이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납입액처럼 수입에서 제외시키는 소득공제 방식을 적용할 이유가 충분하다. 세액공제를 적용하더라도 공제율을 높여야 한다.

근로자 보호를 위해 퇴직연금은 외부 금융회사에 적립해 운용한다. 신한금융그룹 등 금융지주회사는 은행, 생명보험, 금융투자, 자산운용 등 계열사를 통해 퇴직연금 수익성 제고에 매진하고 있다. 금융회사 규제를 혁파해 경쟁을 촉진하고 퇴직연금펀드에 기업이익 일부를 기여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