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존 서 퍼맷캐피털 CEO "금융위기와 허리케인, 둘 다 관리 가능한 재해죠"
시작은 8주 계약직이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부인과 첫째 아들의 건강보험을 얻기 위해서였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하버드대에서 생물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박사후 과정(post-doc)을 밟고 있었다. 학부생을 가르치면서 받는 연 9000달러 정도의 수입으로는 값비싼 건강보험료를 감당할 형편이 안됐다. 그는 모교인 MIT 출신이 많은 헤지펀드 운용사 오코너를 찾았다. “월급은 필요 없으니 건강보험만 받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회사는 ‘수학 천재’로 불린 그에게 옵션 등 파생상품의 가격결정 모델을 만드는 일을 맡겼다.

어릴 적 생물의 기원을 파헤치는 게 꿈이었던 20대 청년은 이렇게 월가와 인연을 맺었다. 그로부터 20년 뒤 그는 운용자산이 50억달러가 넘는 헤지펀드의 매니저가 됐다. ‘캣본드(cat bond·catastrophe bond의 약어)’로 불리는 대재해 채권 시장을 개척하며 세계 1위 업체로 키운 퍼맷캐피털의 한국계 미국인 존 서(한국이름 서세헌) 대표(CEO)의 얘기다.

생물물리학자에서 월가 트레이더로 변신

[人사이드 人터뷰] 존 서 퍼맷캐피털 CEO "금융위기와 허리케인, 둘 다 관리 가능한 재해죠"
오코너는 당시 계약 기간이 끝나자 그에게 “연봉 25만달러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정식 입사를 위한 스카우트 제안이었다. 그가 대학에서 받던 금액의 27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그는 주저했지만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돈이 목표는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지적인 호기심이 컸다”고 그는 말했다. 자기의 재능을 사겠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월가에 몸 담았지만 그가 한 일은 트레이딩보다는 수학자의 일에 가까웠다. 제조업과 비교하면 연구개발(R&D) 업무였다. “확률은 극히 낮지만 한 번 발생하면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인 이벤트를 감당할 수 있는 금융상품의 가격을 어떻게 매기느냐”가 그의 관심사였다. 이른바 테일 리스크(tail risk)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때마침 1990년대 중반 이후 월가는 지진이나 허리케인 같은 대자연재해로 인한 리스크를 회피하는 금융상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세계 4위 투자은행(IB)이던 리먼브러더스가 공격적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었고, 1997년 그를 스카우트했다. 리먼브러더스에서 보험연계증권(ILS) 트레이더로 근무하던 그는 캣본드 시장의 가능성을 봤다.

그는 “자연재해를 복구하기 위해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거대한 자본시장인 월가에 넘기는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규모 9의 초대형 지진이 한 도시를 타격하면 순식간에 땅이 꺼지면서 대부분 건물이 무너지겠지만 충격이 전 세계로 고르게 분산된다면 일반인들이 진동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이게 캣본드의 원리”라고 설명했다.

서 대표는 대재해의 충격을 채권이라는 금융상품을 통해 흡수하도록 설계했다. 재보험사를 끌어들여 특수목적기구(SPV)를 설립, 캣본드를 발행한 뒤 기관투자가에 팔아 모은 자금을 자본시장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만기 내에 대재해가 발생하면 재보험사가, 발생하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수익금을 갖는다. 헤지펀드는 SPV 설립과 채권 발행 및 판매, 투자금 운용과 수익금 지급 등의 역할을 맡는다.

35세 때 차고에서 창업…캣본드 시장 개척

서 대표는 재해 리스크를 수치화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는 투자모델을 만들었다. 그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며 홍수본드를 예로 들었다. 폭우로 범람 가능성이 있는 도시의 연간 평균 강수량과 홍수 발생 주기, 그로 인한 침수 지역과 피해 규모를 산정해 리스크를 확률적으로 수치화한 뒤 실제 예상한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피해 복구를 위해 재보험사가 지급해야 하는 금액을 근거로 채권을 발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재해 발생 가능성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어떻게 조사하느냐고요. 해당 지역 정부가 이미 수십년 혹은 100년 이상 축적한 자료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석만 하는 거죠.”

캣본드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한 그는 서른다섯 살이던 2001년 리먼브러더스를 떠나 ‘독립’을 결심했다. 그는 ‘페르마의 정리’로 유명한 프랑스 수학자 페르마(영어 발음은 퍼맷)의 이름을 따서 회사명을 지었다. 사무실은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에 있는 자신의 집 차고였다.

출발은 덜컹거렸다. 그는 “캣본드라는 상품 자체가 낯선 데다 이를 자본시장 투자자들에게 파는 것도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와 보험사, 재보험사를 일일이 만나 설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재난 발생에 대비하는 캣본드 시장은 초대형 재난 덕분에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05년 8월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비롯해 미국 멕시코만 일대 도시를 강타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재산 피해 복구에 350억달러가 들어갔다. 가옥과 빌딩 등 피해 보상을 위해 보험사에 청구된 비용만 155억달러에 달했고, 이로 인해 11개 보험사가 문을 닫았다. “1842년 독일 함부르크가 대화재로 폐허가 됐을 때 독일의 보험산업 전체가 파산한 뒤 재보험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생겨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 거죠.”

그동안 테일 리스크에 둔감했던 각국 정부와 보험사들이 앞다퉈 그를 찾았다. 지금까지 퍼맷캐피털이 발행한 캣본드는 영국 런던 홍수, 멕시코 지진, 플로리다 허리케인 본드 등 36개에 달한다. 그는 보험사를 카지노에 비유하며 “카지노를 보면 어느 게임 테이블이든 한 번은 잭팟이 터지기 마련”이라며 “하지만 카지노가 망하지 않는 것은 유능한 매니저가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캣본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헤지펀드 운용사는 100여 곳에 이른다. 이 중 퍼맷캐피털의 시장점유율(지난해 기준)은 25%로 업계 1위다. 최근 3년간 수익률은 24%로 연평균 7.5%가 넘는다.

금융위기도 재해…캣본드 원리로 헤지 가능

최근의 기후변화는 캣본드 시장의 또 다른 기폭제가 되고 있다. 그는 이를 ‘캣 갭(cat gap·재난 격차)’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캣 갭이란 매년 발생하는 대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이에 대비한 위험 회피 비용 간 차이를 뜻한다. 그는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 때문에 재해의 경제적 피해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반면 캣본드를 통해 이를 헤지하는 비율은 아직 10% 수준에 불과해 시장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외환위기와 같은 금융재해에도 캣본드의 원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 서 대표는 “모든 리스크는 가격을 매길 수 있다”며 “이는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팔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일정한 주기와 확률로 발생하는 자연재해와 마찬가지로 신흥국이 겪는 금융위기도 캣본드 발행 모델과 같은 구조를 적용해 피해를 예방하거나 상당 부분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금융위기나 자연재해는 발생 조건만 다를 뿐 결국 비용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고 말했다.

캣본드란…

자연재해 '베팅' 고위험상품
재해 발생땐 원금 날릴 수도


지난해 6월 세계은행은 3000만달러 규모의 캣본드(대재해 채권)를 발행했다. 만기 3년의 이 채권은 바하마,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인근 16개국에서 초특급 허리케인이나 지진이 발생할 경우 피해 복구에 들어가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캣본드는 지진과 쓰나미, 홍수 등 재산상 큰 피해가 예상되는 자연재해에 대비해 발행하는 보험연계증권(ILS)의 일종이다. 미국 플로리다 지역의 허리케인, 터키 및 일본의 지진, 유럽 폭풍우, 호주 사이클론 등이 보험 대상이 되는 리스크다.

캣본드는 투자 손실 위험이 있기 때문에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 등급인 ‘BB’ 이하다. 수익률은 발행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나 미국 국채 금리에 연 6~8%포인트의 프리미엄이 더해진다. 캣본드의 특징은 금융시장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재해 발생 확률에 근거하다 보니 경기 흐름이나 통화정책, 경제성장률 변화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성에 좌우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기관투자가들이 리스크 회피를 위한 분산 투자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 규모는 연평균 20% 이상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회사인 아르테미스에 따르면 캣본드 발행 규모는 2006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해 사상 최고치인 88억달러를 기록했다. 총 발행 규모는 지난해 250억달러를 넘어섰다.

웨스트포트(미국)=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