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2014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비용 초래한 판결 5選…혼란 부추긴 통상임금·쌍용차 정리해고 '之자' 판결
법률 전문가들은 올해 법원 판결 중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유발한 대표적인 판결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건을 꼽았다. 통상임금 관련 하급심도 재판부에 따라 판단이 엇갈려 혼란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변호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 등 법률 전문가를 상대로 한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올해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유발한 판결’을 꼽아봤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쌍용차 정리해고의 대법원 선고에 앞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한경DB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쌍용차 정리해고의 대법원 선고에 앞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한경DB
쌍용차 정리해고 ‘오락가락’
1심 해고 인정…2심 뒤집어
대법, 파기환송…갈등 정리


전문가들이 ‘나쁜 판결’로 가장 많이 지적한 것은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확인 소송의 2~3심 판결이었다. 103명 중 37명(35.9%)이 이 판결을 문제로 꼽았다.

이 사건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민사2부(부장판사 조해현)는 지난 2월 “2009년 정리해고 당시 쌍용차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있지 않았다”며 근로자 153명을 원직 복직시키라고 판결했다. 앞서 1심은 이런 요건이 충족된다고 보고 정리해고를 인정했지만 2심에서 뒤집은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이 사건 3심에서 원심의 판단을 대부분 부정하며 다시 근로자 패소 취지로 뒤집어 파기환송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 판결을 내리고 있다. 한경DB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 판결을 내리고 있다. 한경DB
엇갈린 통상임금
하급심간에도 판결 제각각
노사간 임금협상 ‘난항’


두 번째로 높은 응답률을 기록한 경제 관련 문제 판결은 통상임금 하급심이었다. 103명 중 14명(13.6%)은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이후 잇따라 나온 통상임금 후속 하급심 판결이 재판부마다 엇갈렸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지난 9월까지 대한항공 등 대부분 판결은 전원합의체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지급일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주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부산지방법원 민사7부(부장판사 성금석)는 르노삼성자동차 소송에서 “해당 상여금의 비중이 크다”는 이유로 이 같은 성격의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했다. 과거 3년치 미지급 임금을 소급청구할 수 있느냐를 놓고도 하급심 판단이 엇갈렸다.

일당 수억 ‘황제노역’
‘유전무죄’…국민적 공분 사
‘향판 제도’ 폐지로 이어져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의 중심에선 일명 ‘황제노역’도 7명(6.8%)의 전문가가 문제의 판결로 꼽았다.

이 판결의 당사자인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재판을 받은 건 2010년이지만 해외에 있다가 귀국해 노역장에 유치된 건 올해다. 허 전 회장이 일당 5억원으로 노역장에 유치된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이 판결을 한 장병우 전 광주지법 원장이 사퇴하고 ‘향판’이라 불리는 지역법관 제도도 폐지됐다.

한 응답자는 “빈부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 대표적인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금액은 낮아졌지만 올해에도 고액 노역장 유치는 일부 이어졌다.

세계지리 정답 혼선
수능 8번 문항 ‘전원 정답’
9000여명 등급 상승


수험생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에 관한 1심도 혼선을 부른 판결로 꼽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반정우)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 57명이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정답을 2번으로 한 결정을 취소하고 이를 토대로 수능 등급을 재조정하라”며 교육부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작년 12월 패소 판결했다.

지난 10월 서울고법 행정7부(수석부장판사 민중기)에서 1심을 뒤집고 전원 정답 처리하면서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았다. 결국 9000여명의 등급이 상승하는 등 수많은 수험생이 올해 입시까지 오랜 기간 발을 동동 구르게 한 판결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불법 점거 농성장 철거 불법?
덕수궁 앞 불법 농성자
공무집행방해 무죄 선고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장기 농성을 벌이다 공무원들과 충돌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지적한 응답자도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우인성 판사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간부에게 지난달 무죄를 선고했다. 이 간부가 속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를 연일 열었다. 중구청은 농성장 강제 철거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공무원과 노조원들 사이에 무력 충돌이 빚어졌다.

우 판사는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이상 관련 법 규정에 의한 규제는 제한적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 응답자는 “해당 시위로 시민이 불편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병훈/정소람/배석준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