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경쟁 격화와 내수시장 침체로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급속도로 악화된 가운데 내년부터 경영활동을 옥죄는 규제가 줄줄이 쏟아진다. 17일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친 서울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기업 경영 기상도를 보여주는 듯하다. 연합뉴스
해외경쟁 격화와 내수시장 침체로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급속도로 악화된 가운데 내년부터 경영활동을 옥죄는 규제가 줄줄이 쏟아진다. 17일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친 서울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기업 경영 기상도를 보여주는 듯하다. 연합뉴스
‘악재(재앙)는 홀로 오지 않는다’는 뜻의 화불단행(禍不單行). 내년 경영계획 수립에 분주한 주요 기업들이 절감하는 용어다. 국내외 경제 불안과 실적 악화로 가뜩이나 힘든 시기에 줄잡아 10개의 ‘경제민주화’ 관련법의 감시와 규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여야가 정치적 이득을 보기 위해 각각 경제민주화 구호를 들고 나왔던 후폭풍이 몰아닥치는 것이다.

○수직계열화 전략 큰 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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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관련법 시행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내년부터 시행되는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등을 차질 없이 집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기업들의 관심은 집행 강도와 명확한 가이드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애매한 법조항이 적지 않다. 지난해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강화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대표적이다. 이 규제는 올해 2월부터 시행됐지만 실제 적용 시점은 내년 2월부터다. 기존 거래에 대해 1년의 유예기간이 부여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자산 5조원 이상인 대기업집단 계열사가 총수 일가에 일감 몰아주기 방식으로 부당 이익을 제공할 경우 위반금액 대비 최고 1.6배의 과징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불공정 거래(일감 몰아주기)의 기준이 되는 ‘정상가격’과 ‘정상거래’의 개념이 모호해 계열사 간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정상적인 거래와 가격이 규제당국 잣대로 넘어가면 언제든지 불공정 거래로 돌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보다 근본적으로 경영효율 제고를 위한 대기업들의 수직계열화 전략에도 큰 차질이 예상된다.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신속한 의사결정, 내부거래 비용 감축 등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다.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한국 기업들이 오랜 기간 공들여 구축해 놓은 수직계열화가 흔들릴 경우 주력 제품의 공급사슬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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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처벌까지 각오해야 할 판

하도급업체를 상대로 부당하게 납품단가를 인하하거나 발주를 취소하는 데 대해 피해액의 3배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하도급법도 기업들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거센 추격과 엔저(低) 심화로 일본 전자·자동차업계의 글로벌 공세 강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입지를 더욱 좁힐 수 있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부당’한지에 대한 기준도 애매하다. 해외 경쟁기업의 가격 인하 공세를 맞받아치기 위해 제조단가 효율화를 추구하는 것은 세계 모든 기업이 채용하고 있는 비용전략이다. 이런 움직임에 ‘부당’이라는 굴레를 씌워 협력사(중소기업) 피해액의 3배를 배상하도록 한 것은 이른바 ‘갑(甲)-을(乙)’ 논란에 떠밀린 정부와 국회의 징벌적 제재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불공정거래에 대한 검찰고발권을 기존 공정위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청과 감사원, 조달청에도 허용하는 법안까지 시행됐다. 대기업 입장에선 협력업체와의 거래에서 손해배상뿐만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각오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회가 주요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는 가운데 경영에 큰 부담을 주는 법안들만 기업들을 막아서고 있다”며 “호황기라면 몰라도 지금 같은 투자 빙하기엔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세종=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