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증시 문 앞에 멈춰선 韓 기업들…언제 열릴까 '노심초사'
한국 기업들의 해외 주식시장 상장에 제동이 걸렸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로 해외 증시 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앞서 상장한 국내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폐지되면서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이랜드, 녹십자 등 해외 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던 국내 기업들은 상장 일정을 잡지 못하고 시장 분위기만 지켜보고 있는 상태다.

◆ 韓기업들 "해외 증시 상장 일정, 글쎄요"

올 들어 국내 기업 중 네이버 녹십자 유원컴텍 등은 의욕을 갖고 해외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해왔다.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은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모바일메신저 '라인'을 앞세워 일본 또는 미국 증시에 상장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녹십자 중국법인 GC차이나(Green Cross China)와 이랜드 중국법인 이랜드패션차이나홀딩스, 전자부품 제조기업 유원컴텍의 자회사 혜주유원화양정밀부품유한공사도 해외 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소셜커머스 쿠팡도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이 해외에 상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후 구체적인 상장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 녹십자, 이랜드, 유원컴텍 모두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로 해외 증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랜드 관계자는 "인수·합병(M&A)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홍콩 증시 상장을 추진해왔다"며 "내부적으로 자금 조달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도 있지만 해외 증시 분위기가 안 좋아 현재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녹십자는 중국 혈액분액제제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홍콩 증시 상장을 진행하고 있지만 일정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3년 전부터 나스닥 상장을 계획한 쿠팡도 시장 흐름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유원컴텍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회사 관계자는 "중국 선전 증시 상장을 통해 회사 인지도를 쌓고, 자본을 조달하려고 했지만 상장 시기를 구체적으로 잡지 못했다"며 "시장 분위기도 어둡고 중국 본토 기업들의 상장도 밀려 있어 아직 상장 신청서도 내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 해외 증시 개척자들, 줄줄이 상장폐지 '고배'

앞서 상장한 한국 기업들의 부진한 성적표도 상장을 추진 중인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미국 나스닥시장에 남아 있는 한국기업은 게임 개발사인 그라비티 단 한 곳이다. 앞서 벤처 붐을 타고 나스닥에 상장했던 게임사 웹젠과 반도체 설계사 픽셀플러스, 통신업체 두루넷·와이더댄 등 한국 기업들은 실적 부진, 주가 하락 등의 여파로 줄줄이 상장폐지됐다.

마지막 나스닥 상장사인 그라비티의 상황도 좋지 않다. 그라비티 주가는 23일(현지시간) 0.75달러에 장를 마감했다. 주당 1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셈이다. 부진한 주가 흐름으로 현재 나스닥 상장 유지 자격을 놓고 오는 11월까지 유예기간을 갖고 있다.

채영진 한국예탁결제원 글로벌서비스부 차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를, 안정적인 수익을 담보하기 위해선 미국이나 영국을 눈여겨 보고 있다"며 "이전만큼 한국 기업에 대한 수요가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들이 상장 유지에 대한 부담으로 자진 상장폐지를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채 차장은 "해외 증시에서 상장을 유지하려면 비용이 들고, 해당 국가의 기준으로 공시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며 "자금 조달을 위해 상장한 기업 입장에선 상장을 유지하기가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강지연 기자 ali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