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軍에서 배운 적극·긍정적 사고 대학강단의 꿈 이룬 원동력 됐어요"
순천대 사회과학대 2호관 5층 귀퉁이에 있는 13㎡ 규모의 공공정책학과 사무실. 박정우 겸임교수(58·행정학과)가 쓰는 연구실이다. 지난 14일 이곳에서 만난 박 교수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군인’이었다. 날카로운 눈매, 꼭 다문 입술, 절도가 밴 말투와 장식품이라곤 벽에 걸린 조그마한 인물판화가 전부인 수수한 사무실 분위기 등 모두가 그랬다.

그는 34년을 부·준사관으로 복무한 직업군인 출신이다. 강의를 시작한 지 1년도 안되는 초짜 교수다. 올해 1학기부터 ‘지방자치와 지역발전’ 과목을 맡아 1주일에 2시간씩 강의하고 있다. “교수라는 옷이 잘 맞느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제대한 지 4년이 지났지만 군대 물이 아직도 빠지지 않았다는 소릴 자주 듣습니다. 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병영에서 보냈는데 어디 쉽게 사람이 변하겠습니까?”

그래도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교수라는 평생의 꿈을 이뤘다. 2009년 제대한 그는 지난해 순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적우수자로 줄곧 장학금을 받았다.

수기공모에서 최우수상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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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수기로 썼다. ‘포기하지 않은 꿈, 그리고 도전끝에 얻은 행복.’ 여기에 그의 삶의 궤적, 새로운 인생 여정에 대한 소회와 열정 등을 담았다. 이 수기로 그는 최근 국가보훈처에서 실시한 ‘2014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첫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가 순천대 겸임교수로 임용된 것은 지난 2월이었다. 그땐 너무 기쁘고 설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했다. 강의연습도 매일 교재를 펼쳐놓고 가족을 대상으로 하고 또 했다. 하지만 너무 간절히 기다려온 탓인지 막상 수업에서는 준비한 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첫 수업의 실패는 약이 됐다. 그걸 거울삼아 수업준비를 더욱 꼼꼼하게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은 학생들 사이에서 강의 때 사례를 많이 드는 교수로 잘 알려져 있다. 지역개발론을 소개할 때도 인근 지방자치단체의 사례를 들어 학생들의 수업참여도와 성취도를 높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학원생들의 논문지도에도 열성적으로 나서 그가 지도해온 대학원생 2명이 오는 11월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정년 2년 앞두고 제대, 박사 도전

그는 박사학위를 군사작전처럼 속전속결로 땄다.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한 뒤 3년2개월 걸렸다. 박사과정 입학 때만 해도 주변에선 기대보다 우려가 많았다. 군대 동기들조차도 “박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고 말렸다. 석사과정 때 지도교수는 “박사학위는 모든 걸 포기하고 집중해도 힘들다. 나이도 있으니 여기서 만족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교수가 포기할 수 없는 꿈이기도 했지만 오기가 발동했다. 입학 3개월 전인 2009년 12월 말에 명예퇴직을 신청해 제대부터 했다. 정년을 2년 앞둔 시점이었다. 군 생활과 학업을 병행해온 그가 공부에만 매달리겠다며 배수진을 친 것이다. 박사과정은 절대 녹록지 않았다. 의지만으론 역부족이었다. “체력과 기억력은 자꾸 하향곡선을 긋는데 하루종일 책과 씨름해야 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큰소리를 쳐놓은 게 있어 죽기 살기로 매달렸죠.”

체력 등 불리한 여건은 노력으로 메웠다. 수업에다 보고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느라 하루 2~3시간 쪽잠을 자는 날이 다반사였다. 체력은 틈날 때마다 등산하면서 보강했다. 지난해 5월 그가 쓴 ‘국방부문 아웃소싱 정착 요인에 관한 연구’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가진 군 생활을 바꿔 놓은 아내

그가 대학강단에 서겠다는 포부를 품은 때는 1976년 4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군대에 자원하면서다. 이전까지만 해도 가정은 유복한 편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광주에서 공단 내 보일러 시설을 관리해오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숙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어머니마저 거액의 투자사기를 당하면서 가족은 단칸 월세방의 고단한 생활로 내몰렸다. 2남2녀 중 셋째였던 그는 1976년 광주 동신고를 졸업하고 조선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한 뒤 곧바로 부사관으로 자원 입대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막내 여동생의 학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언젠가는 대학강단에 서겠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간 군대 생활은 한동안 엉망이었다. 그도 남처럼 좀체 가지 않는 ‘국방부 시계’를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자신의 꿈과 현실의 격차와 세상에 대한 원망이 울화로 치밀어 오를 때면 술을 찾았고 툭하면 주먹질을 해댔다. 아내 정향남 씨(57)를 만난 게 전환점이었다. 광주 상무대에서 포병교육을 받던 중에 만난 아내는 그의 생활을 180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그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에서 모범 부사관으로 변신했다. 그는 교관경연 포술경연 음어경연 등 각종 경연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다. 강원 양구 20사단 탄약관리관 근무 때는 국가기능공 양성사업에서 6회 연속 전군 최우수부대로 이끌어 육군 참모총장 표창을 받았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규칙적인 습관

군 생활 중 시험을 통해 준사관으로 승진했지만 학업에 대한 열정은 갈수록 끓어올랐다. 2000년 12월 전후방 순환근무로 전남 순천으로 근무지가 옮겨지면서 드디어 공부할 기회가 찾아왔다. 순천대 행정학과 3학년에 편입해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군대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그는 군대를 “대학교수의 꿈을 가능하게 해준 토대였다”고 말했다. 그는 군 생활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렸다고 했다. 학창 때 그의 성적은 중간을 맴돌았다. 그러나 그는 군 생활 틈틈이 익힌 영어로 대학원 시절 영어스터디그룹을 이끌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또 군 생활을 하면서 다닌 대학과 대학원 과정에서도 언제나 뛰어난 성적을 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주저 없이 “군대의 규칙적인 습관”이라고 답했다. 규칙적인 공부가 학업의 집중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도 젊은이들과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던 비결이었다. 전공을 행정학으로 바꾼 것도 군대에서 조직 관리를 하면서 축적해온 노하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사회복지 공부 더해 복지정책에 일조

‘가족의 힘’도 컸다. 그는 강단에 서기까지 아내와 자식(3남매)들이 큰 힘이 돼줬다고 했다. “교수는 꿈에 그리던 일이었지만 사실 주저도 했습니다. 가족들의 응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끝까지 밀고 가기 어려웠을 겁니다. 특히 미용실을 운영하며 뒷바라지해 온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있었기에 대학원 시절 내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오는 12월17일 광주지방보훈청 요청으로 광주제대군인지원센터에서 제대 군인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꿈을 크게 갖고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며 △목표에 최선을 다하라는 자신이 체득한 세 가지 교훈과 함께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줄 계획이다. 지역사회 재능기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순천의 남승룡마라톤 조직위원회 운영위원장과 지역사회 컨설턴트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공부를 하면서 제도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향후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행정학의 복지정책 분야와 연계해 정부나 지자체의 복지정책 보완·개선에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순천=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

[人사이드 人터뷰] "軍에서 배운 적극·긍정적 사고 대학강단의 꿈 이룬 원동력 됐어요"
兵·장교 사이 직급 부사관
최종학력 낮지만 학구열 높아…주말·야간 대학편입 등 지원


부사관(副士官)은 병사와 장교 사이의 중견 간부를 말한다. 하사-중사-상사-원사 네 계급으로 나뉜다. 초급 간부인 하사는 일반적으로 육군 분대를 지휘하거나 정비나 수리와 같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 기술자로 배치돼 경력을 쌓는다.

장기복무자인 고참 부사관은 각 부대에서 지휘관을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장교에 비해 한 부대에 비교적 오래 근무해 직업 안정성은 더욱 높은 편이다.

준사관은 군에서 원사 위 소위 아래 계급 전문사관으로 고참 부사관 중 준사관 후보생 선발과정을 통해 뽑힌다. 임관 뒤에는 영관급 장교 못지 않은 처우를 받으며 전문성과 경력을 모두 인정받는다. 육군 항공부사관(헬기조종사), 3군 통합 통번역부사관과 같이 민간인 중에서 직접 선발하는 전문 준사관도 있다.

부사관들의 최종 학력은 4년제 대학 재학 중에 입대하는 인원이 많은 병사보다 낮다. 2013년 육군부사관학교 입교자 중 35%가 고졸이었다. 일반 병사의 대학 재학 이상 비율은 56%다. 이에 국방부는 군내 중견 간부인 부사관들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사이버대학 원격평생교육기관 등을 이용한 학점은행제를 마련해 놓고 있다. 부사관학교에서 취득한 학점을 대학과 교류해 학점으로 인정받고 학사학위 취득 시 활용하는 것이다. 임관 후 원격강좌를 통해 매년 6학점 이상을 취득할 수 있다.

한 육군 대대장은 “초급 부사관들이 학업욕구가 높아짐에 따라 인근 2년제나 4년제 대학에서 주말과 야간을 이용해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부대에서 배려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