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복지정책으로 변질된 中企적합업종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가 2기를 맞는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는 제조업 및 서비스업 분야의 20여개 품목에 대해 중소기업적합업종 신규지정을 검토 중이다. 그리고 시행 3년차를 맞는 기존 적합업종의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기존 100개 품목 중 올해로 기한이 만료되는 82개 품목 전체가 재지정된다면, 중기적합업종 품목은 최대 120여개에 이를 수 있다. 시장이 아닌 ‘인위적 기구’가 개별기업의 시장 잔존 여부를 판정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인간은 특정의무가 부과되는 것보다 특정혜택이 사라지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혜택이 사라진다는 것은 ‘100% 세율의 세금’이 암묵적으로 부과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복지 함정’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중기적합업종도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다. 중기적합업종제도가 사라지면 그간 누려왔던 혜택은 사라진다. 개인이 아닌 기업이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은 문제다. ‘불행한 개인’은 있을 수 있어도 ‘불행한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합업종 제도는 산업정책을 넘어 ‘복지정책화’됐다.

동반성장위원회와 중소기업 유관단체들은 지난 3년간 적합업종제도에 대해 성공적이었다는 자체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긍정평가가 적합업종제도 연장의 합리적 논거가 될 수는 없다. 적합업종제도가 연장되기 위해서는 중소사업자들의 수익증대 이외에 ‘소비자이익과 산업경쟁력 제고에 이 제도가 무엇을 기여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불가능하다.

적합업종제도는 경쟁을 억압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소비자 이익에 반(反)한다. 가격과 품질 면에서 소비자의 선택이 제한돼 그만큼 소비자 후생이 감소한다. 또 적합업종제도는 산업경쟁력 제고에 역행한다. 최근의 실증연구(이병기, 2014년 6월)에 의하면, 적합업종 지정(2011년)을 계기로 산업의 생산액증가율, 사업체증가율, 사업체당 생산액증가율 등의 단기성과가 개악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압력의 부재가 산업과 기업의 효율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적합업종 제도는 ‘숨은 손실’을 내포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규제가 특히 그렇다. 특정 가맹본부의 출점을 규제하면 1차적으로 해당 브랜드로 진입을 원하는 가맹점에, 2차적으로 가맹본부에 연결된 협력업체와 노동자 그리고 식자재 등을 공급하는 농민들에게 손해를 끼친다. 보호받는 차상위 가맹본부의 이익보다 규제받는 가장 경쟁력 높은 가맹본부의 직·간접적 손실이 훨씬 클 수 있다. 그리고 규제받는 대기업과 연결된 중소기업, 농민, 임시직 등은 보호받는 중소기업주보다 사회적으로 열위에 있다. 그렇다면 적합업종 지정은 정의에 반하는 조치가 된다.

적합업종제도는 ‘지식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어떤 업종이 중기적합업종인지 여부는 경쟁을 통하지 않고는 사전에 알 수 없다. 만약 특정 업종이 진정으로 중소기업에 적합하다면, 중기 이외의 기업은 자연히 도태될 것이다.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적합업종제도는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다.

적합업종제도는 ‘경제민주화’의 정치적 파생상품이다. 화두가 깊은 성찰 없이 ‘정책의 옷’을 입으면 졸속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적합업종은 대기업의 횡포가 아닌 과다진입이 빚어낸 문제다. 적합업종 지정은 가뜩이나 포화상태인 ‘레드오션(red ocean)’을 더 과밀하게 만드는 악수가 될 수 있다.

적합업종제도는 노무현 정부마저 제도가 갖는 반(反)시장성과 비(非)실효성으로 폐기한 ‘고유업종제도’를 부활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적합업종 추가지정 및 재지정은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국가전략으로 국민적 역량을 모으는 규제개혁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