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사죄' 獨 메르켈에 서울평화상
자국의 과거 가해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진정 어린 반성을 보여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서울평화상을 받는다.

서울평화상심사위원회(위원장 이철승)는 1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최종 심사위원회를 열고 메르켈 총리(사진)를 제12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메르켈 총리가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학살) 자행 등 세계 평화를 파괴한 과거 만행에 대해 이스라엘과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사죄해 가해국과 피해국 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치유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현직 국가수반으로는 첫 수상자다.

메르켈 총리는 2007년 9월 유엔총회에서 독일의 역사적 잘못을 국제사회에 거듭 사과했다. 이듬해 3월에는 이스라엘 의회 연설을 통해 “쇼아(홀로코스트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독일인에게 가장 큰 수치”라며 이스라엘 국민은 물론 전 세계에 공개적이고 분명하게 사죄했다. 독일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8월 2차 세계대전 당시 4만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나치 수용소 다하우 추모관을 방문해 “수감자들의 운명을 떠올리며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심사위원회는 이를 통해 메르켈 총리가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면서 세계적으로 과거의 만행을 부정하고 있는 국가와 인권을 유린하는 현존 독재 국가들에 경종을 울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심사위원회는 또 “메르켈 총리가 붕괴 위험에 놓였던 유럽연합(EU)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리더십을 바탕으로 세계로 파급될 수 있는 경제위기를 어느 정도 차단함으로써 인류 복지 증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독일 최초 여성 총리인 메르켈은 2005년 취임한 이후 3기 연임하며 독일을 이끌어왔다. 유럽 경제위기를 맞아 주변국에 긴축기조와 경제 체질개선을 요구하며 위기 극복을 주도하는 등 EU의 중심축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서독 함부르크 태생이지만 출생 직후 목사인 아버지의 선교활동 때문에 동독으로 건너가 성장했으며 통일과 함께 중앙정치무대에서 역량을 키웠다. 통일독일 초대 내각 여성청소년장관을 거쳐 환경장관을 지냈다. 라이프치히대 물리학 박사 출신으로 러시아어와 수학에 능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순위에서 2010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에게 한 번 밀린 것을 빼면 2006년부터 줄곧 1위다.

격년제로 시상하는 서울평화상은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기념해 제정됐다. 1990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처음으로 수상했고, 201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상을 받았다. 12회 서울평화상 시상식은 향후 메르켈 총리의 방한계획에 맞춰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며 메르켈 총리에게는 상장과 상패, 20만달러의 상금이 수여된다.

이해성 기자 l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