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되살린 누드 퍼포먼스
벌거벗은 사람이 전시장에 있다. 얼굴은 여자인데 몸은 남자다. 의자에 앉아 있지만, 정신은 반수면 상태다. 중국 현대미술 작가 마류밍(45·사진)이 1998년부터 스위스,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세계를 돌며 벌인 ‘펀·마류밍’ 퍼포먼스의 한 장면이다.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은 관객 몫이다. 작가 앞에는 셀프 타이머를 설정한 자동 카메라가 있다. 관객들은 직접 셔터를 누르고 10초 사이에 작가가 앉아 있는 의자 옆에서 기념 사진을 찍어야 한다. 옷을 훌렁 벗어 던지는 관객, 작가의 어깨와 다리에 자신의 옷을 덮어주는 관객, 작가의 나체를 더듬는 관객, 여러 명이 몰려와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다. 플래시가 터지는 10분의 1초는 예측 불가능한 순간으로 변한다.

‘마류밍 개인전’이 다음달 5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다. 회고전 성격을 지닌 이 전시에는 그의 영상·회화·사진·조각 등 지난 20여년간의 작품 48점이 소개된다. 2006년 서울 아트사이드갤러리 전시에 이은 두 번째 국내 개인전이다.

중국 아방가르드 1세대로 꼽히는 그는 중국 현대미술 퍼포먼스에 관객 참여를 처음 시도한 작가다. 1993년부터 ‘펀·마류밍’이란 이름으로 나체 퍼포먼스를 벌였다. 중국 중년 여성들의 이름에 많은 글자 펀(芬)을 빌려와 또 다른 여성 자아를 만들었고 퍼포먼스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나체로 만리장성을 걸었던 마류밍은 1994년에는 공터에서 장신구와 감자 등을 삶아 접시에 내놓는 ‘펀·마류밍 런치’ 퍼포먼스를 했다. 선정적이란 이유로 그는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두 달 동안 유치장에 갇혔다. 전시를 위해 내한한 그는 “모든 구속과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자유, 신체 해방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마류밍은 2004년 이후 펀·마류밍 퍼포먼스를 중단하고 회화 작품에 집중했다. 그의 몸이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웠을 때 퍼포먼스를 그만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작인 ‘10분의 1초’ 시리즈는 과거 펀·마류밍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다. 자신의 퍼포먼스에 출연했던 관객들을 회화 안에 옮겨 놓았다. 성긴 마대 사이로 물감을 밀어내는 ‘누화법’은 두툼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펀·마류밍 퍼포먼스는 최근 중국 후베이시에서 ‘행위예술 30년:중국 행위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은 있는가’를 주제로 열린 콘퍼런스에서 중국 현대미술사에 기록될 퍼포먼스 1위로 뽑혔다. (02)720-1524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