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경제가 죽는 이유, 진정 모른다는 것인지…
지난주 정부가 내놓은 경제회생 정책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음을 주말 내내 근심하였다. 각오를 다졌던 최경환 부총리도 전례 답습과 더 큰 포퓰리즘에 의존하고 말았다. 41조원의 공(公)금융을 동원하고 기업 유보에 과세하며, 화끈한 확대(적자) 재정을 짜겠다는 계획이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쌓아올린 포퓰리즘에 유보과세라는 또 한 건의 메뉴를 추가하는 것이며 재정 건전성의 금기까지 허물어버리겠다는 선언을 ‘지도 밖’이라고 한다면 그렇다고 답할 뿐이다.

국내총생산(GDP)의 40% 선에서 통제되고 있는 국가부채를 GDP의 50%까지만 늘려도 더 쓸 수 있는 돈은 무려 150조원이다. 좋다! 그런 방법으로 박근혜 정부는 몇 년은 견딜 것이다. 그러나 남미행 급행열차는 그렇게 출발의 기적소리를 울린다. 정부가 각종 공금융을 동원하면 당장은 수치가 좋아진다. 그러나 그런 돈은 거품이 되거나 필연적으로 낭비된다. 금융은 기존 거래처에 할당되고 적당히 역꺾기를 하면서 수지를 맞추어 나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공공개혁은 조용히 헛소리로 되고 만다. 숨겨진 국가부채, 공기업 개혁도 물 건너간다. 면죄부는 그렇게 지난주에 조용히 발행되었다.

기업유보금 과세는 그것의 명칭을 아무리 바꾸어 본들 경영권을 침해하고 주주자율성을 훼손하며 황금 거위의 배를 갈라 단박에 황금덩어리를 수중에 넣자는 어리석음의 기념비다. 우선 기업들의 장단기 투자계획을 엉망으로 만들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증시 활황을 만들어 낼지 모르지만 장기 투자자에게는 실망을 안겨주게 된다. 유보를 털어먹고 나면 중국 기업들의 경영권 침탈 공세가 무서울 것이라는 점은 양념거리 걱정이다. 부디 소 잃고 외양간 타령은 하지 마시라. 국회의원들 중에는 이 어처구니 없는 유보과세에 찬성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정치인들의 입맛에 딱 맞는 증세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국과 입법자들이 어깨의 힘을 느낄 때마다 정책의 질과 국가의 격(格)은 떨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 국제통화기금(IMF)은 결국 영국 정부의 경제 정책이 옳았다고 인정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영국 정부의 긴축정책이 잘못되었다며 훈수같지도 않은 훈수를 두느라 시건방 떨었음을 반성했다는 것이다.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캐머런 총리와 오스번 재무장관 콤비가 추진한 정책은 △법인세 인하(30%에서 20%로) △고소득층 무상교육 폐지 △규제완화 △공무원 연금개혁 △재정지출 대폭 삭감(2년간 12%) △주택예산 67.8% 삭감 △지방자치단체 예산 27% 삭감 △대학등록금 지원 폐지(등록금 3배 인상) △국영의료 개혁 등이었다. 주택예산이 대규모로 삭감되었지만 지금 영국 부동산은 과열로 말이 많을 정도다. 나라의 미래가 좋아 보이면 누구라도 집과 땅에 투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대전환이라고 할라치면 그동안의 오류를 하나라도 바로잡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기업들이 왜 투자하지 않는지, 왜 내수가 이토록 지지부진한지에 대해서는 검토조차 없다는 것인가. 골목 상권 보호한다며 골목길 투자 다 막아놓고, 중소기업 보호한다며 관련 업종 투자 다 막고, 동반성장이라면서 앞서 나서는 것 때려잡고, 과밀억제라며 수도권엔 공장도 못 짓게 하고, 출자규제라며 자본투자 벌주고, 중소기업 보호한다며 대기업으로 커나가는 것 막고, 보조금에 중독시키고, 오로지 축소균형으로 가는 정책들을 펴왔던 것이 지난 10여년이다.

원화 강세도 골목길 보호나 적합업종 등으로 온통 내수투자를 막았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내수투자가 일어날래야 일어나지 못한 결과를 환율이 온통 뒤집어쓰면서 원고(高)로 치달아왔다. 금리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내수와 수출의 균형이 깨어진 바로 그 불균형이 우리 경제의 고질병이 된 것이고 이는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등 오류로 가득찬 구호들이 정치를 지배해온 결과다. 기업이 아니라 정치인과 관료, 평등주의가 경제를 망치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