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도쿄 미나토구 소니 본사에서 열린 2013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기업설명회(IR)장.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소니는 2년 만에 1283억엔 적자로 돌아섰다. 올해도 500억엔 적자가 예상된다는 대목에서는 “주주를 비롯한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것을 몹시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엔고에 끝내 쓰러진 기업들

[환율 1000·1000…허약해진 '맷집'] 한국기업, 저환율 대비 못하면 日기업 추락 전철 밟을수도
한때 세계 전자업계를 호령했던 소니의 현주소다. 소니를 비롯한 일본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추락은 1990년대 엔고에 따른 내수침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에서도 IT와 자동차는 환율에 가장 민감한 업종으로 꼽힌다. 1960년 이후 30년간 일본 IT업계 매출은 연평균 14%의 높은 성장세를 이어왔다. 1985년 엔화의 기조적 절상을 다룬 플라자합의 이후에도 일본 IT기업들은 월등한 경쟁력을 앞세워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경제의 거품붕괴와 가팔라진 엔고로 인해 매출은 정체되고 수익성은 급락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 IT업계 영업이익률은 1980년대 말 5%에 육박했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1%대로 주저앉았다. TV 등 전통 가전 부문에서는 한국 대만 기업들에 밀린 데다 PC 등 디지털부문에서는 미국 기업들에도 고전했다.

일본 야노경제연구소의 다케미 스기모토 수석부장은 “1990년대 엔고로 수익창출에 급급했던 일본 업체들은 2001년 IT거품이 꺼지자 삼성전자에도 시장을 내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본 IT업체들은 2000년대 들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인력 감축을 통한 고정비 절감과 저수익 사업의 축소와 철수, 전략적 제휴를 통한 구조 개편이 잇따랐다. 소니는 2003년 전자사업 130개 분야 중 48개 분야의 철수와 축소를 진행했고 파나소닉, 도시바 등은 1만명 이상을 감축했다.

○“한국도 원고에 적극 대비해야”

일본 IT업체들은 이 같은 구조조정에도 좀처럼 예전의 힘을 찾지 못했다.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에 이은 글로벌 금융위기는 일본 IT업계에 또다시 엔고 쓰나미를 몰고 왔다. 2008년 11월에는 13년 만에 처음으로 엔·달러 환율이 100엔대를 밑돌았고, 11개월 뒤에는 75엔대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겹쳐 일본 IT업계는 2008년 영업적자, 2009년엔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부진에 빠졌다. 엔고로 인한 수익성 악화는 시설 및 연구개발(R&D) 투자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또 실적부진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빚어졌다. 특히 사업 축소로 우수한 인재가 떠나고 조직문화가 흔들리면서 부활은 더욱 힘들어지는 상황에 처했다.

글로벌 시장판도는 급변했다. 소니, 샤프, 도시바, 파나소닉 등 일본 4대 전자업체의 시가총액 합계는 2011년 삼성전자 한 회사에도 미치지 못했다. 영업이익에서도 이들 4개사 합계(2013회계연도)는 7300억엔(약 7조3000억원)으로 삼성전자 36조8000억원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지난해 엔저 덕분에 샤프, 파나소닉은 3년 만에 흑자를 냈지만 과거의 명성에는 크게 못 미친다.

다케미 수석부장은 “원고를 맞고 있는 한국은 일본 기업들의 퇴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중국이 무섭게 쫓아오는 등 글로벌 시장 내 기술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자칫 방심하다간 삼성 LG도 힘든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