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미래창조과학부 주최로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제1회 2014 겨울 SW 창의캠프’에서 한 초등학생이 KAIST 대학
생 멘토의 도움을 받아 프로그래밍 언어인 ‘스크래치’를 배우고 있다. 미래부 제공
올 2월 미래창조과학부 주최로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제1회 2014 겨울 SW 창의캠프’에서 한 초등학생이 KAIST 대학 생 멘토의 도움을 받아 프로그래밍 언어인 ‘스크래치’를 배우고 있다. 미래부 제공
[STRONG KOREA] 프로그래밍 교육 빼고…PC교육 의무화 폐기…뒤로만 간 한국
지난 8일 서울 종로의 한 컴퓨터학원. 10명 이하의 수강생이 설계 프로그램인 ‘오토캐드’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대학생부터 직장인, 주부까지 다양한 수강생이 보였지만 중·고생은 없었다. 성인을 위한 취업 강의이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이 컴퓨터 학원업계에 종사해온 이 학원의 실장 한모씨는 “1990년대 초 초등학생부터 베이직 등 컴퓨터 언어를 배우기 위해 앞다퉈 학원에 다니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며 “정부 자금지원을 받아 성인 대상 취업 강의를 주로 하는 학원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1980~90년대 컴퓨터 붐 증발

한때 국내에 컴퓨터 배우기 ‘붐’이 일어 동네마다 컴퓨터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0~30년 전 얘기다. 세계 최초 가정용 컴퓨터인 ‘애플Ⅱ’가 1977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이후 국내에서도 ‘신기술’인 컴퓨터 교육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졌다.

‘앞으로 컴퓨터를 모르면 경쟁에서 낙오할지 모른다’는 절박함에 아이 손을 잡고 컴퓨터학원 문턱을 드나드는 학부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방학기간 중에는 컴퓨터 강의 수강생이 30~50% 늘어나는 등 과열 현상을 보였다.

주요 운영체제(OS)가 텍스트 기반의 MS도스에서 윈도로 바뀌고, OS상에서 구동되는 애플리케이션도 사용자경험(UX)과 사용자인터페이스(UI)를 고려해 직관적으로 변하면서 프로그래밍 자체에 대한 필요성은 줄었다. 요즘 PC·스마트폰 이용자는 카카오톡을 이용해 대화하고 크롬 브라우저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지만 그 ‘뒷단’에 있는 구조는 이해할 필요가 없게 됐다.

프로그래밍 → 활용 중심으로 개편

1990년 처음 시작된 컴퓨터 정규 교육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왔다. 초·중·고교에서 가르치는 컴퓨터 교육은 1987년 문교부 고시에 의해 초등학교에서는 4~6학년이 배우는 ‘실과’ 과목 일부로, 중학교에서는 ‘기술·가정’ 과목 일부로 도입됐다. 고등학교에서는 선택과목인 ‘정보산업’이 신설됐다. 실제 교육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부터다.

직업 교육의 하나로서 중앙처리장치(CPU)와 저장장치의 구조 등 컴퓨터 전반에 대한 이해와 프로그래밍 내용을 포함한 것이 특징이다. 이 방침은 1992년 교육부 고시를 통해 일부 내용이 변경될 때까지도 주효했다. 하지만 1997년 교육부 고시에서는 갑자기 프로그래밍 교육이 통째로 빠진다. ‘도구적 활용’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다.

이 기조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교육계 전문가들은 활용 중심의 컴퓨터 교육이 학교 현장의 컴퓨터 교육을 ‘구색 맞추기’로 전락시킨 큰 이유라고 입을 모은다.

PC 심화과목으로 변경

정부 교체에 따른 IT정책 급선회로 컴퓨터를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 수는 증가하다가 2000년대 말 꺾였다. 정부는 2000년 주당 컴퓨터 관련 교과목을 한 시간 이상 이수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초·중등학교 정보통신기술 교육 운영지침’을 내렸다. 2000년대 초·중반 컴퓨터 과목 선택비율이 급격히 치솟은 이유다. 안성진 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김대중 정부 시절 IT가 미래 먹거리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당시 컴퓨터 과목 선택 비율이 96%까지 높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IT 중흥 교육 기조는 사라졌다. 의무 이수 지침을 2008년 폐기했을뿐더러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고시를 개정, 올해부터 적용되는 컴퓨터 교육은 컴퓨터 자체에 대한 접근도를 낮췄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정보 및 정보과학’ 교과가 일반과목에서 심화과목으로 이관 편성됐기 때문이다. 일반학교에서 선택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김현철 한국컴퓨터교육학회장은 “심화과목 변경으로 인해 일반 학교에서 선택할 가능성은 8% 이하로 낮아졌다”며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에 관심과 재능이 있는 일부 학생들이 선택해 들을 수 있는 ‘기회’조차 제도적으로 막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양적·질적 측면 모두 퇴보한 SW 현장 교육이 지금부터라도 변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김 회장은 “디지털경제 시대로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컴퓨터 과목은 과거 산업경제 시대에서의 수학이나 과학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게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보영/김태훈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