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씨앗은 권력이다…세계는 지금 종자 전쟁중
한국의 ‘대표적 매운맛’으로 손꼽히는 청양고추 종자의 소유자는 다국적 기업 몬산토다. 한국에서 개발되고 재배되던 청양고추 종자는 중국 산둥성에서 채종돼 국내로 ‘역수입’된다. 농업의 산업화가 가장 발달한 미국의 경우 1903년 농무부에 등록됐던 상업 작물 중 96%가 지금은 재배되지 않는다. 옥수수의 96%, 토마토의 95%, 아스파라거스의 98%는 현재 사라졌다.

“농사꾼은 종자를 베고 죽을지언정 결코 먹어 없애지 않는다”는 건 이제 옛말이 됐다. 농업의 산업화는 종자를 농민의 품에서 앗아갔고 종자는 몇몇 다국적 대기업의 통제를 받게 됐다.

[책마을] 씨앗은 권력이다…세계는 지금 종자 전쟁중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는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종자 전쟁’의 실상을 보여준다. 책은 “오늘날 지구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업에 의한 종자 지배가 장래에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종자 기업은 상품성이 좋은 특정 품종만 내놓는다. 품종이 단순해질수록 개발 및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다. ‘많은 양’을 파는 것이 중요하지 ‘많은 품종’을 내놓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종의 단순화’가 초래하는 비극이다.

‘종의 단순화’로 인한 피해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건 19세기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이다. 감자를 주식으로 먹던 아일랜드에서 1845년 잎마름병이 유행했다. 문제는 재배되던 감자가 거의 단일 품종이어서 피해 규모가 엄청났다. 이후 몇 년간 감자 수확량이 급감하면서 100만여명이 굶어 죽고 300만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초국적 종자기업은 종자뿐만 아니라 농업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게 이 책의 지적이다. 이런 기업들은 대부분 농화학회사를 갖고 있어서 농약에 맞춰 유전자 조작으로 종자를 개발해 농약과 종자를 함께 판다. 가령 미국의 몬산토는 대두(大豆) 종자 ‘라운드업 레디’와 제초제 ‘라운드업’을 함께 판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라운드업은 라운드업 레디 대두만 남겨놓고 모든 식물을 죽인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기업들의 말과는 달리 농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미국 소비자들이 지출한 농산물 가격 가운데 농가의 몫으로 돌아가는 비율이 1910년대에는 40%였지만 1990년대에는 7% 수준으로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종자, 농기계, 농약, 비료 등이 차지하는 비율은 18%에서 37%로 늘어났다.

책은 ‘종자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며 인도의 나브다냐 운동, 호주 시드세이버스네트워크, 브라질 바이오나투르 같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종자 주권은 종과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해 지구촌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종자가 소수 거대 자본의 이윤과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고 모든 인류에게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씨앗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1년 2월 방영된 TV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풀어냈다. 시간 제약상 방송하지 못한 세계 각국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문헌 자료, 사진 등을 재구성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