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음악세계를 모던발레로 재현한 ‘멀티플리시티’.
바흐 음악세계를 모던발레로 재현한 ‘멀티플리시티’.
나초 두아토의 명성에 걸맞은 무대였다. 바흐의 음악을 몸짓으로 표현한 그의 안무는 새로움을 넘어 파격 그 자체였고, 유니버설발레단원들의 열정은 무대를 꽉 채우고도 남았다. 아름답고 처연했다. 이 작품을 놓친 무용 관객은 두고두고 후회할 무대였다. 고전발레에 질린 관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난 25일 나초 두아토의 ‘멀티플리시티(다양성)’를 보기 위해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기획사의 홍보 문구를 그대로 믿고 갔다가 배신당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나.

그러나 막이 열리고 바흐의 음악이 무대 위에 펼쳐지자 반신반의는 놀라움으로 변했다. 발레의 우아함과 현대무용의 자유로움을 쏙쏙 빼서 버무린 작품이었다. 두아토의 천재적인 상상력에 그저 감탄만 나왔다.

1부 ‘멀티플리시티’에서 두아토는 바흐로부터 받은 영감을 다채로운 춤으로 표현했다. 전반적으로 재치 있고 익살스러운 무대였다. 그중 압권은 ‘칸타타 BWV 205 중 에울로스’에 맞춰 18명의 무용수들이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내는 장면이었다. 무용수들은 유연한 몸동작으로 악기, 음표, 음향이 돼 바흐의 음악을 시각적으로 뛰어나게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첼로 연주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바흐를 맡은 예브게니 키사무디노프는 첼로로 변한 김나은의 몸을 섬세하게 연주했다.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2부 ‘침묵과 공의 형상’은 바흐의 말년과 죽음에 초점을 맞췄다. ‘토카타’(BWV 538)의 비극적인 오르간 소리에 맞춰 선보인 남성 7인무가 인상적이었다. 그 뒤를 이어 눈먼 바흐가 음악을 상징하는 무용수에 이끌려 무대에 나온다. 바흐의 감성을 나타내는 하얀 가면을 쓴 여인과 함께 이성과 욕망으로 갈등하는 고뇌를 그려낸다.

마지막 장면은 바흐의 음악에 대한 경외다. 바흐는 쓰러지지만, 무대 뒤편 오선지를 형상화한 철골 구조물엔 무용수들이 음표처럼 서 있다. 그는 죽음의 문턱으로 걸어가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영원하다는 메시지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두아토에게 받은 영감으로 들뜬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박수가 이어졌다. 이날 공연 시작 전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이 무대에 올라 고전발레와 모던발레에 관한 차이점에 관해 직접 시연하며 설명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