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3일부터 7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 관객이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정석범 기자
지난해 10월3일부터 7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 관객이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정석범 기자
최근 20년 사이 경매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상대적으로 갤러리의 영업환경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여건을 타개하기 위해 딜러들이 중심이 돼 창설한 것이 아트페어(미술품 견본시장)다.

아트페어는 엑스포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산업박람회의 아트버전으로 그 역사는 15세기 중반 안트베르펜에서 열린 미술장터인 ‘판드(Pand)’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 국제 미술시장이 활성화된 것은 불과 20년도 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경매시장에 잃어버린 미술시장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갤러리의 노력과 세계 미술시장의 폭발적 성장세에 힘입은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하나의 아트페어가 생길 정도로 21세기는 아트페어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수많은 아트페어 중에서도 최상위 클래스는 마스트리흐트, 아트 바젤, 바젤 마이애미비치, 프리즈 런던 등 네 개를 꼽는다. 이 4대 아트페어는 브랜드 가치가 워낙 높아 세계적인 갤러리 소속의 딜러들이 너도나도 최고의 수작을 들고 와 판매하려 한다. 이곳에 참여했느냐 못했느냐가 곧 화랑의 수준을 재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슈퍼리치 컬렉터들 역시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만큼은 전용 비행기를 띄워서라도 참석하려고 안달한다. 자신의 부를 뽐내고 고상한 기호를 자랑하는 데 이만큼 좋은 곳은 드물기 때문이다.

불과 4~5일 동안 개최되지만 이곳에서 판매되는 미술품의 양과 판매액은 세계적인 경매회사들의 연간 판매액과 맞먹을 정도다. 그래서 많은 갤러리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갤러리 공간보다는 아트페어에서 거둬들이기도 한다. 최소 수천만원의 참가비가 들지만 마케팅 효과까지 감안한다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차분히 명품을 감상하려는 목적으로 아트페어에 간 관람객은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임시로 가설된 부스에 작품을 덕지덕지 배열해 놔 미술관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트페어는 전 세계 주요 갤러리의 야심적인 출품작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꿈 같은 장소다. 자신이 원하는 작가의 작품을 비교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매까지 일사천리로 마칠 수 있다. 비즈니스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컬렉터에게 이보다 더 좋은 구매방식은 찾기 어렵다.

세계적인 아트페어를 관람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입장이 시작되자마자 들어갔는데도 1급의 명품에는 이미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때가 많다. 일반 오픈에 앞서 VVIP에게 프리 오픈을 통해 우선권을 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망하지 마시라. 숨은 진주는 여전히 곳곳에 널려 있다. 문 열자마자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면 명품을 얼마든지 거머쥘 수 있다. 평소 1급 갤러리에서도 사기 어려운 명품이 수두룩하다.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일부 아트페어의 주최 측은 입장권을 차등화해서 판매하기도 한다. 오프닝과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은 일반 입장권보다 서너 배 비싸다.

4대 아트마켓 중 가장 먼저 열리는 것은 3월의 마스트리흐트 아트페어(네덜란드)다. 다른 아트페어와 달리 비교적 긴 열흘 동안 열리는 이 아트페어는 고미술품이 많이 출품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1년 창설된 바젤 아트페어는 매년 6월 스위스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이곳은 참가 갤러리 자격을 엄격히 관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신청 화랑의 3분의 1만이 참여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북미와 남미의 부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바젤 아트페어 조직위원회가 창립한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는 예상을 깨고 큰 성과를 거둬 세계 최대의 아트페어로 떠올랐다. 6월이면 마이애미는 슈퍼리치 컬렉터는 물론 각계 유명 인사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매년 10월 런던 리전트 파크에서 열리는 프리즈 아트페어는 2003년 설립된 신생 아트마켓이다. 실험성 강한 현대미술로 차별화를 꾀해 파리의 피악(FIAC)을 제치고 단숨에 4대 아트페어로 떠올랐다.

[CEO를 위한 미술산책] 작품 비교부터 구매까지 '한자리'…슈퍼리치도 전용기 타고 오는 곳
국내의 대표적인 아트페어로는 한국화랑협회가 주관하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화랑미술제, 마니프 서울아트페어, 아트쇼 부산 등이 있다. 그러나 해외 아트페어에 비해 참가 화랑의 수준이 들쭉날쭉하고 운영의 세련미도 결여돼 있다. 국내 아트페어가 국제적 수준의 아트페어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존 행사와의 차별화, 명확한 타깃 컬렉터 층의 설정, 높은 수준의 확보가 관건이다. 참가비만 내면 어느 화랑이든 참가할 수 있는 현 시스템으로는 장밋빛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마켓의 성패는 양질의 물건을 확보하는 데 있다.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아 컬렉터들을 안달하게 만들라.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