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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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에서 열린 윤용로 외환은행장의 이임식. 예상치 못한 ‘손님’이 이임식장을 찾아와 윤 행장을 떠나 보내는 자리를 함께했다. 주인공은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갑작스레 물러나는 윤 전 행장을 ‘예우하기 위해서’라는 등의 해석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김 회장의 깜짝 방문 자체가 화제가 됐다. 계열 은행장의 이임식에 지주회사 회장이 참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은행 노조는 대주주인 하나금융에 대해 이런저런 요구와 함께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임식장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우발적인 마찰이 생길수도 있어서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외환은행 노조도 김 회장의 소탈한 성격과 진정성을 알기 때문에 행사 참석을 두고 별 반발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강성노조와의 갈등속에서도 금융그룹 수장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수완을 높이 평가했다.

지난해 말 금융지주 회장실 비서 두 명 중 한 명을 외환은행 출신으로 교체한 데서도 김 회장의 스타일을 읽을 수 있다.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게 되는 비서에 외환은행 출신을 임명함으로써 배려하고 소통하려는 최고경영자(CEO)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였다는 분석이다.

“끌고 가기보다 끌려 오게 해야”

김 회장은 스스로 주류는 아니라고 말한다. 30년간 몸담아왔지만 기획이나 전략을 담당한 적이 없다. 영업 한 분야만 팠는데도 금융지주 회장에 올랐다. 그는 하나금융 전신인 한국투자금융 출신의 이른바 ‘성골’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세울만한 집안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그가 뱅커로서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금융지주 회장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영업 현장을 구르면서도 남다른 신념을 견지한 덕분이다. 눈앞의 영업을 위해 머리를 조아리는 대신 ‘이 사람은 진짜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진정성을 담아 고객을 응대한 결과다.

김 회장은 2008년 하나은행장을 맡은 직후 영업보다 자산건전성을 더 챙겼다.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영업만 몰아붙여 직원들을 지치게 하는 수장이 돼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영업맨 출신이면서도 무조건 영업을 다그치기보다 한 박자 쉬어갈 줄 아는 배려는 많은 직원의 호감을 얻었다. 리더십이란 ‘끌고 가는 것’이 아닌 ‘끌려 오게 하는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김 회장의 소탈함과 배려는 외환은행 인수작업을 마무리하고 ‘시즌 2’를 시작한 하나금융의 현 상황에서 필요한 리더십이라는 평가다. 김승유 전 회장이 특유의 카리스마로 인수합병을 거듭하며 성장을 이끈 게 제1기라면, 이제 불어난 몸집을 잘 추스르고 내실을 키워 제2기를 맞이해야 한다는 얘기다.

임직원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집중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김 회장의 이런 방식은 2006년 11월 하나대투증권 사장직에 오르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그는 증권업을 모르는 은행 출신의 ‘낙하산’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만만찮은 반대를 겪었다. 그럴수록 직원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사내 행사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당시 유행하던 ‘마빡이’ 춤을 추며 직원들과 어우러졌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직원들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이렇게 직원들 마음의 문을 열고 난 후에 자신의 생각을 전하곤 한다. ‘상명하달’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임직원들을 CEO의 열렬한 팬으로 만들어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매년 1만여명의 임직원이 모여 여는 ‘출발’ 행사(시무식)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된다. 회장 취임 후 첫 번째 행사였던 지난해 1월 그는 색소폰을 들고 나타났다. 이전까지는 만져본 적도 없었지만 한동안 저녁 자리를 마다하고 연습에 매달려 노사연의 ‘만남’을 성공적으로 연주했다. 처음 보는 임직원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동시에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만남’을 운명적으로 만들자는 의미를 담았다.

올 1월 행사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올 해는 2025년까지 달성할 그룹의 새 비전 발표를 겸했다. △국내 은행 중 이익 1위 △글로벌 영업비중 40%로 확대 △글로벌 40위, 아시아 5위 금융사 도약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자칫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CEO의 지침을 전달하는 자리가 될 수 있었던 행사를 반전시킨 건 김 회장의 꽹과리 연주였다. 사물놀이패를 이끄는 상쇠 역할을 자처했다. 한계에 다다른 국내를 벗어나 금융 한류를 이뤄내자는 메시지였다. 그가 강조해 온 솔선수범, ‘끌려 오게 하는 리더십’의 단면이다. 진정한 리더는 스스로 노력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 임직원의 자발성을 이끌어 내야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어떤 일에서든 기본은 결국 ‘사람’


2002년 서울은행을 합병한 뒤 영남사업본부 부행장을 맡아 지역에 내려간 김 회장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뭘까. 양사 출신 직원들과 함께 1박2일로 온천에 다녀온 일이다.

이 같은 김 회장의 포용적 리더십은 저금리·저성장 시대의 공통 과제가 된 글로벌화를 추진할 동력으로 평가받는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처음으로 통합한 인도네시아 법인 명칭은 ‘PT Bank KEB Hana’. 외환은행의 영문명 KEB가 하나은행보다 먼저 나온다. 외환은행의 기업금융 노하우와 하나은행의 소매금융을 융합해 글로벌 플레이어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다. 실리와 효율을 좇는 데 형식에 구애받는 건 하수라는 게 그의 평소 생각이다. 하나금융의 의사결정은 매사 이런 방식이다. 형식과 자존심만 내세우다 자칫 경쟁력을 잃으면 모두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고객의 82%, 직원의 98%가 인도네시아 현지인이다. 내부뿐 아니라 현지인과 현지문화와도 융합해 그들의 마음을 얻는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이다. 무대는 커졌지만 김 회장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하나금융호를 이끌고 있다. 조직의 기본인 ‘사람’을 중심에 두는 사고만이 ‘시즌 2’를 맞이하는 하나금융을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게 흔들리지 않는 그의 소신이다.

김정태 회장 프로필

△부산 출생(62)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1981년 서울은행 입행 △1986년 신한은행 입행 △1992년 하나은행 입행 △2002년 하나은행 부행장(영남사업본부대표) △2006년 하나대투증권 사장 △2008년 하나은행장 △2012년 하나금융지주 회장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