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기업 신문고 - 이런 규제 없애라] 180m 통로 내는데 8년 피 말리는 나라
경기 안산시 반월산업단지에 있는 서울반도체 공장. LED(발광다이오드) 전문기업인 이 회사는 근처에 있는 자회사 서울바이오시스에서 LED 칩을 공급받는다.

자나 깨나 생산성 향상을 고민하던 이정훈 서울반도체 사장은 2006년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공원을 사이에 두고 있는 서울반도체와 서울바이오시스 공장을 잇는 것이다.

서울바이오시스는 칩을 트럭으로 서울반도체에 납품하고 있다. 직선 거리로 약 180m인 두 공장에 지하 통로를 만들어 칩을 운반하면 효율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이 사장은 확신했다. 품질 관리 효율도 높아진다. 곧바로 인허가 등 절차상의 문제를 알아봤다. 연결 통로가 지나갈 땅의 80% 이상이 회사 소유여서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규정에 발목이 잡혔다. 공원에 통로를 내려면 시에서 공원점용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공익 목적 외에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규제’를 넘기 위한 ‘고난’이 시작됐다. 지역 상공회의소를 통해 가능한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는 한편 관련 정부 부처에도 수없이 민원을 제기했다. 그래도 별무효과, 뾰족한 해법이 나오지 않았다. 그새 국내 생산 물량의 30%가 중국 톈진에 세운 자회사 광명반도체로 넘어갔다. 안산 공장의 효율화 작업이 막히자 회사 측은 1조5000억원대의 LED 설비 증설 작업을 중국 공장에서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년 9월 극적인 전기를 맞았다. 사연을 접한 국무총리 산하 민관합동 규제개선추진단이 발벗고 나선 것이다. 안산시, 회사 측과 머리를 맞대고 내놓은 해법은 통로를 반지하로 짓고, 일부를 시민에게 개방함으로써 공익 목적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추진단은 오는 17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규제개혁장관회의에 서울반도체 사례를 보고하고 건설 허가를 논의할 계획이다. 박 대통령이 언급했듯 비상한 각오로 임하면 해결할 수 있는 규제 사슬이 8년 만에 풀리게 된 것이다.

박해영/김병근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