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다시, 여전히 기술력이다
지난해 말 의원외교 일정으로 알제리에 다녀왔다. 알제리는 최근 한국 건설사들이 눈부신 활약을 벌이고 있는 나라다. 얼마 전 알제리 전력청이 발주한 1600㎿급 복합화력발전소 6개 건설 프로젝트에서 무려 5개의 수주권을 한국 건설사들이 거머쥔 것. 총 수주금액은 33억4000만달러, 무려 3조5000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분명 가슴 뿌듯해야 할 소식인데 현장에서 만난 한 건설사 임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수주금액의 25%는 독일 업체에 줘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발전의 핵심장비인 가스터빈을 만들지 못해요. 기술력이 안 되거든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직도 우리 기술력이 안 되는구나….”

‘수주전쟁에서 이겨야 길이 열리는 한국 기업’과 ‘일이 찾아오는 독일 기업’의 차이는 기술력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독일은 현재 기술력에 안주하지 않고 제조업 생산체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추진하며 미래 경쟁력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의 추격도 거세다. 미국 바텔연구소 ‘2014 글로벌 R&D 투자전망’에 따르면 중국의 올해 연구개발(R&D)비는 300조원으로 2022년에는 세계 최대 R&D국가인 미국을 앞지를 전망이라고 한다. 미국과 일본 또한 적극적인 산업 경쟁력 강화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니 세계가 새로운 기술전쟁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실은 어떨까? 미래창조과학부 ‘2012년도 연구개발활동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총 R&D비용은 55조4501억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4.36%로 세계 2위라고 한다.

문제는 이 많은 비용이 세계적 원천기술 개발과 신규시장 창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눠먹기식, 보여주기식의 목표수치 맞추기에 급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 연구개발비의 대기업 집중, 보호받지 못하는 중소기업 기술, 여기에 기술 푸대접으로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는 창조경제, 서비스산업 발전은 강조하면서 그 근간이 되는 기술력과 산업 경쟁력에 대한 정책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올해의 기술선도기업’ 명단에서 한국 기업이 자취를 감춘 지도 10년이 넘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새해 목표에 ‘우리만의 기술 근육 키우기’가 들어가야 할 때다.

김현미 < 민주당 국회의원 hyunmeek@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