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차지한다.’

독주하는 대기업이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삼성 착시현상’. 그 단골 근거다. 삼성전자를 뺀 총수출은 마이너스라거나 삼성그룹이 정부보다 더 벌었다는 새 버전도 등장했다. 하지만 숫자의 함정이 위험 수준에 달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통계 작성에 나섰던 정부와 한국은행 실무자도 사실상 손을 들었다.

삼성그룹 매출은 한국 GDP의 23%…정부보다 더 벌었다고?

○매출과 부가가치는 다르다

기업평가기관인 CEO스코어는 13일 2012년 한국의 GDP에서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이 23%에 달한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매출을 국민계정상 GDP와 비교했다. 일부 언론에선 2012년 삼성전자 매출(201조원)이 GDP(1272조원)의 18%라고도 썼다. 하지만 통계적으로는 크게 과장됐을 뿐만 아니라 맞지도 않는 수치다.

GDP는 정해진 기간 국내에서 새로 생산된 부가가치의 총합이다. GDP에서 삼성전자 몫을 계산하려면 삼성전자의 매출이 아니라 부가가치를 봐야 한다. 한 기업의 부가가치는 매출에서 부품값 등 중간 단계에 투입된 가치를 뺀 것이다. 따라서 부가가치는 매출보다 훨씬 작다. 주현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의 부가가치는 영업이익에 인건비 감가상각비 등을 합산해 대략 알 수 있다”며 “이 경우 삼성전자의 GDP 비중은 2.7%(2012년)로 핀란드 노키아의 4%(2007년)보다 훨씬 작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집계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계산한 부가가치도 정확하지 않다. 기업의 회계 작성 방식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구개발(R&D) 금액은 투자로 처리할 수도 있고 비용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 전자를 선택하면 부가가치가 늘어난다. GDP 통계는 지난해까지 이를 비용으로 처리했다. 김영태 한은 국민소득총괄팀장은 “특정 기업의 회계지침을 꿰뚫고 있어야 정확한 부가가치를 알 수 있는 셈”이라며 “설문과 전수조사로 완성된 거시총량지표(GDP)와 기업의 미시지표를 비교하는 게 옳은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은은 지난해 금융통화위원회의 요청에도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도 삼성전자를 뺀 GDP 지표를 만들려다가 같은 이유로 손을 들었다. 이날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이번 작업에 대해 “그렇게 깊이 있는 분석은 아니다”며 “경제정책의 변화로 받아들이지 말아달라”고 뒤로 물러섰다.

○통계 착시가 의도하는 것들

삼성전자가 없었다면 지난해 총수출액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였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의 공인된 수출액 통계가 없어 대신 ‘국외매출’을 전체 수출액에서 뺐다. 하지만 삼성전자 국외매출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생산해 판매한 것까지 포함돼 있다.

노충식 한은 국제수지팀장은 “스마트폰은 80% 이상이 해외 생산분인 점을 고려하면 과다 계상됐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삼성전자 제품엔 수많은 협력사 부품도 포함돼 있어 ‘삼성전자가 없다면’이란 가정엔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부적합한 통계가 현실 직시를 오히려 방해한다고 말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삼성 착시론은 제2, 제3의 삼성이 나오지 않는 한국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하지만 과장된 수치가 판을 치면서 대기업이 이익을 다 가져간다는 정치적 논리로 변질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개성공단 피해액을 GDP와 비교하는 식의 ‘통계 착시’가 잊을 만하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며 “숫자의 노예가 돼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