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언어로 치유한 위안부 상처와 슬픔
일본군 위안부의 상처와 아픔을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닌 오늘을 사는 우리 삶의 문제로 풀어낸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서울시극단의 ‘봉선화’다.

윤정모 작가가 1982년 발표한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가 원작이다. 윤 작가는 요즘 젊은이들의 피부에 와 닿게 하기 위해 오늘을 사는 이야기를 첨가해 극본을 썼다. 원작 소설이 위안부의 상처가 2세대에 어떻게 전해졌는지 조명했다면 연극은 이를 3세대까지 확장했다.

공연은 ‘짓이겨진 봉선화 꽃물’로 상징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지워지지 않는 슬픔을 현시점에서 이야기한다. 성공한 예술대 학장 배문하의 딸 수나는 ‘식민지 속의 여성’을 주제로 한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남자 친구 진호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큐멘터리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위안부 증언자 김순이 할머니를 만나면서 시간은 거슬러 올라간다.

봉선화 물을 들이고 댕기를 사러 다니다 일본군에 잡혀 필리핀으로 끌려간 소녀들이 어떻게 짓밟히고 죽을 고비를 넘겨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지 구체적인 묘사와 상징적인 몸짓이 결합된 무대 언어로 보여준다. 수나는 아버지가 숨겨온 아픈 과거를 알아내고, 아버지를 ‘나눔의 집’에서 찍은 영상 속 할머니와 대면시킨다.

“강제 위안부를 알리는 일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는 윤 작가가 오랫동안 취재한 기록과 경험, 문제의식이 녹아든 작품이다. 극적 완성도를 떠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가 세대를 거쳐 유전되고,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일 수 있음을 호소력 있게 보여준다. 연극은 후반부에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된 사진·영상 자료와 함께 23년째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 집회에 참여한 할머니들의 증언을 영상으로 전한다. 공연은 내달 1일까지, 2만~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