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30년 반도체 꿈 접는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사진)이 자신의 꿈인 반도체 사업을 접기로 했다. 최근 며칠간 밤잠을 설치면서 고심한 끝에 시스템반도체 회사인 동부하이텍을 팔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 11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측으로부터 “시장의 우려를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해 달라”는 ‘압력’을 받았을 때도 동부하이텍 매각은 고려하지 않았다. 1969년 대학 4학년 때 2500만원으로 시작한 건설업 못지 않게 반도체 사업은 기업가로서 그의 오랜 꿈이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때는 삼성전자와 같은 1983년 3월. 당시 몬산토와 합작해 코실(현 LG실트론)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국내 최초로 반도체 재료인 웨이퍼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1997년 동부하이텍의 전신인 동부전자를 세워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데 이어 2002년에는 동부전자보다 덩치가 50배 이상 큰 아남반도체를 인수했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은 그의 예상보다 험난했다. 1997년 이후 작년까지 15년간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그동안 쏟아부은 돈만 2조원이 넘었다. 2009년 9월에는 35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마침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부하이텍은 올해 창사 16년 만에 흑자 전환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봉오리가 터질 순간에 김 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접기로 했다는 소식에 그룹 임원들도 깜짝 놀랐다. 김 회장은 시장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동양그룹 사태 이후 신용 리스크가 커지면서 채권단의 압박도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동부그룹은 17일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 등 2015년까지 총 3조원어치의 자산을 매각해 6조3000억원 규모의 차입금을 2조9000억원대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2015년에 산업은행과 맺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에서 완전히 졸업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정인설/이상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