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한 백화점에서 고객들에게 고가의 한정판 청바지 예약주문을 받았다. 열혈 고객들이 몰리는 바람에 예약판매는 순식간에 마감됐다. 그런데 제품 공급에 문제가 생겨 백화점 측은 고객들에게 청바지를 받는 시기가 몇 주 정도 지연될 거라고 알렸다. 안내를 접한 일부 고객은 주문을 취소했다. 그리고 막상 청바지가 입고됐을 땐 이를 사는 고객이 별로 없었고, 결국 청바지는 나중에 헐값에 처분됐다.

청바지 고객들은 왜 변심했을까. 백화점 이벤트에서 고객들에게 의미가 있었던 것은 ‘기대’ 그 자체였지 실제 제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대를 갖는 순간 가치는 배가되고, 기대하던 것이 이뤄지자 그 매력은 빛을 잃은 것이었다.

[책마을] 손안에 있는 새보다, 잡힐 듯한 새가 더 가치 있다 !
《넥스토피아, 미래에 중독된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따라 움직이는 ‘기대사회’로 변했다고 진단한다. 기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이미 했거나, 벌써 일어난 일에는 흥미를 잃고 곧바로 다음 할 일에 더 주목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데이트를 하는 것보다 데이트를 기다리는 것이 더 행복하고, 제품을 산 순간보다 다음 제품을 기다리는 행복감이 더 크다는 것이다.

저자는 애플은 상품 그 자체보다 사람들의 기대 심리를 제어하는 능력으로 성공한 기업이라고 주장한다. 애플은 신제품 개발과 출시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면서 약간의 정보를 야금야금 푸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기대감을 극대화했다는 것. 애플은 언제나 새로 출시될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굉장한 제품이라고 소문을 퍼뜨리면서 곧 출시된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몇 달씩 기다리게 한 뒤, 몇 주 전부터 예약판매를 한다. 마침내 제품이 출시되지만 이것은 이전보다 성능이 개선된 버전일 뿐이다. 하지만 긴 기다림, 선주문, 제한된 공급, 품절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고객들의 기대감은 계속 증폭된다.

패스트패션업체 H&M은 아예 제품을 쉽게 살 수 없게 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샤넬 디자이너와 함께 만든 한정판 제품의 경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매장에 모여서 ‘줄서기 대행’이라는 신종 직업까지 등장시켰다. 이 제품들은 인터넷에서 몇 배 이상의 가격에 거래됐다. 구매에 실패한 사람들은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됐고, H&M은 소비자의 관심을 계속 붙잡아 두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또한 생활 수준이 나아지는데도 사람들의 행복 수준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는 이유, 사람들이 자꾸 결혼을 미루는 이유 등 기대사회의 현상들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